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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때문에 … 국회서 뭉갠 '어린이집 CC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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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원아 폭행 사건이 일어난 인천시 송도동 어린이집 앞에서 16일 오후 엄마들이 폭행 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서명을 하고 있다. 서명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송도국제도시 주민 연합회 등은 이달 말까지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보건복지부에 전달, 사건 재발과 어린이집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다. [강정현 기자]

새누리당과 보건복지부가 16일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날 서울 강서구의 한 어린이집을 찾아 ▶어린이집 폐쇄회로TV(CCTV) 설치 의무화 ▶아동학대 교사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폭력근절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본지 확인 결과 2013년 어린이집 교사 2명이 17개월 여아를 피멍이 들도록 폭행한 ‘부산 어린이집 학대’ 사건을 전후해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국회가 이를 심의했으나 보육계의 반발을 의식한 의원들이 제동을 걸어 법안 자체가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2013년 3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 아동학대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법안 심의에 나섰지만 법안심사소위가 6월 18일 법안을 폐기시켰다. 당시 소위 속기록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은 “국회의원들 방에다가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국민들한테 감시하라고 하면 우리도 찬성할 수 있느냐”는 논리로 반대했다. 같은 당 남윤인순 의원은 “CCTV를 통해 아동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지 굉장히 의문이다. 감시받는 공간은 사랑 넘치는 공간이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도 “아이의 안전과 예방도 중요하지만 보육교사의 인권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현숙·새정치연합 최동익 의원은 “심도 있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으나 새누리당 소속 유재중 소위원장은 “여러 위원님들이 반대하니 CCTV는 못하는 것으로 넘어가겠다”고 정리했다.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어린이집 수가 워낙 많은 데다 원장들이 학부모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의원들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법안을 발의한 박인숙 의원실엔 “어린이집 교사들을 예비범죄자로 보느냐” “반드시 낙선시키겠다”는 등의 항의전화가 폭주했다고 한다.

 2013년 4월 공무원에게 어린이집 원장의 횡령, 교사의 아동 폭행 등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안을 발의했던 새누리당 이운룡 의원실에도 “불태워 죽이겠다. 가죽을 벗겨버리겠다”는 협박 전화가 이어졌다. 이 의원에 동의해 법안에 서명한 다른 의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의원을 제외한 의원 9명이 법안에 서명한 걸 철회해 법안은 자동폐기됐다.

 이날 당정이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를 핵심 대책으로 내놓았고, 새정치연합 백재현 정책위의장도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찬성입장을 밝혔으나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까진 난항이 예상된다.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들이 어린이집 원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정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 통과가 순조롭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경희·정종훈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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