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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승리 뒤엔 중국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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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세 기간 노타이 차림이었던 고이즈미는 일본 정치에 새로운 스타일 이상의 것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그는 국민이 변화를 갈망할 때 새로운 느낌의 대담성과 도전성, 강력함을 보여 주었다. 그를 좋아하든 안 하든,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의 결단력에 존중을 표시한다. 또 많은 이가 그의 강력한 리더십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재미있는 건 이번 선거에서 외교 정책이 화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선거 이슈가 우정 민영화라는 국내의 단일 사건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중국 요소'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지난봄과 여름, 중국을 휩쓴 폭력적인 반(反)일본시위, 그리고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을 막기 위해 중국이 기울였던 노력 등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선 자민당의 압승을 상상할 수 없다. 고이즈미는 그 자신을 '겁 없는 지도자', 또 마치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처럼 비치게 만들었다. 자민당 지지자의 상당수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한다. 그러나 일본인 대다수는 역사에 대한 중국의 안하무인격 주장, 또 동중국해에서의 무력시위에 분개한다.

지난 수개월 동안 중국 정부는 중국인들의 반일본시위를 허용했다. 또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인정해야 한다고 일본을 압박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은 일본엔 엇갈린 축복이다. 현재 일본 경제 회복의 상당 부분이 중국 붐에 편승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해질수록 중국은 그 힘을 정치적.군사적 힘으로 전환할 것이다. 일본은 이 점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또 중국과 격렬한 경쟁을 벌이기 위해선 개혁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개혁을 위해 일본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고이즈미의 승리는 국민의 기대가 너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민당으로선 큰 부담이다. 특히 고이즈미가 대도시.청년.여성 표를 집중 공략했기에 자민당 표밭엔 이미 변화가 생겼다. 이들이 고이즈미 외의 다른 자민당 리더에게도 똑같은 충성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자민당 지도자는 이들을 잡기 위해 더 대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

현명한 지도자는 민족주의를 어떻게 개혁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안다. 그러나 일본 지도자들은 거꾸로 개혁에 대한 지지를 민족 감정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또 중국은 불행하게도 도쿄 지도자의 민족주의적 스타일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 일본이 베이징의 평화적인 부상(浮上) 전략에 불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에 놓인 위험은 무엇인가. 그것은 계속 강력해지고 대담해지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총리가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위해 중국과 일본을 충돌의 길로 몰고 가는 것이다.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날로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본과 중국은 경제적인 합리성보다는 증오에 의해 보다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국가의 위상과 지위, 자부심 등의 요소는 지역 패권과 해상 우위권 장악을 위해 경쟁 중인 두 나라가 다투는 것들이다. 아직 양국 충돌의 불가피성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몇 달, 또는 몇 년 안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리=유상철 기자

요이치 후나바시 일본 아사히 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