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든 실내든 CCTV 널렸는데 왜 어린이집만 인권 운운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국 엄마들을 분노하게 한 인천 송도 어린이집.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15일 오전 이곳을 찾았다. 불이 꺼진 채 인기척이 없었다. 출입문엔 ‘관리실에 계좌번호를 남기면 이미 입금한 입학금과 필요경비를 환불해주겠다’는 안내문과 사과문이 붙어 있었다. 어린이집 앞에서 만난 학부모 김모(38)씨는 기자에게 “1년 넘게 대기한 끝에 간신히 입학한 건데 이런 사고가 났다”면서 “어린이집이 부족한 상태라 엄마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요즘 엄마들의 최대 관심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과 사람이다. 6세·4세 아들을 둔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 모두 입학 당시 2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당첨’됐다. 추첨에서 떨어진 엄마들이 기자를 마치 로또 당첨자를 보듯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던 몇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정부가 무상보육을 확대하고 있으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심하고 맡길 곳과 사람이 태부족이라는 사실이다. 이날 어린이집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던 김정석(34)씨는 “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에서도 끔찍한 폭행사건이 일어나는데 없는 곳은 어떨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5세와 100일 된 두 아이를 둔 아빠라는 김씨는 “거리든 실내든 CCTV가 널렸는데 하필 어린이집에 설치하는 건 인권 문제를 이유로 왜 막는가”라고 물었다.

 CCTV가 보육교사나 원장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네 살배기 아이가 증언하지 않는 한 아동 학대는 은폐될 수밖에 없다. 네 살 여아가 폭행당하던 순간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겁에 질린 듯 두 손을 모으고 폭행 장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이집 안에 CCTV를 설치하는 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어도 아동 학대를 막을 수 있는 단기적인 대책은 된다는 게 이곳 학부모들의 얘기였다.

 네 살 된 딸을 둔 김모(37)씨는 “선생님께 CCTV가 설치돼 있는지 묻고 싶어도 괜히 우리 아이가 밉보일까 봐 못 물어봤다”며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촬영한 영상을 오랫동안 보관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묻는 게 직업인 기자 역시 김씨와 마찬가지로 두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CCTV가 있는지 묻지 못했다. 취재하는 내내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정부는 오늘도 ‘안심 보육’을 외친다.

송도=이에스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