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이집트 휴양지 샤름 알샤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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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이집트 최대 해변휴양지 샤름 알샤이크에서 한 선물가게 주인이 3일 팔리지 않고 있는 라마단 장식등(파누스)을 정리하고 있다.

"올해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은 씁쓸합니다."

텅 빈 노천 음식점에서 접시를 닦던 라자크(23)는 말했다. 점심시간이 꽤 됐지만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관광객으로 넘쳐날 시기다. 이집트 최대 해변 휴양도시인 샤름 알샤이크의 10월 초 모습치고는 이례적이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 시민들은 라마단을 맞아 4일 한 달간의 성스러운 단식을 시작했다. 일출과 일몰 사이 낮시간에는 물과 음식은 물론 담배도 멀리한다. 신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종교적 의식이다. 배고픔을 느낀 뒤 저녁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매일 축제를 벌인다. 그런데 올해는 영 다르다.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라크.인도네시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집트.팔레스타인 등 이슬람 국가들에선 올해 라마단이 감사의 축제가 아니라 한숨과 절망의 시기다.

"올해는 카이로에 가는 걸 포기했습니다." 라자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도 카이로에서 500여㎞나 떨어진 이곳 시나이반도 남단에서 땀 흘리며 일한 대가가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라마단이 찾아오면 1년 내내 모은 돈으로 선물을 사서 고향 카이로로 휴가 가는 것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7월 말 이곳에서 발생한 테러 때문이다. 60여 명의 내.외국인이 사망한 테러 이후 '중동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던 도시가 썰렁해졌다. 이따금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가게 점원들의 호객소리만 빈 거리를 채운다. 폭탄테러가 터졌던 가잘라 호텔은 아직도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다.

"2일 발생한 테러로 라마단 기분을 날려버린 인도네시아 발리의 무슬림들에게도 위로를 보내고 싶다." 바닷가 요지에 자리잡은 셰라턴 호텔 부지배인 왈리드(43)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광업에 의존하는 우리나 발리 주민에게 테러는 재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왈리드도 라마단 휴가를 반납했다. 호텔 운영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을 제공하는 3박4일 패키지 상품이 1인당 9만원이다. 이런 세일에도 불구하고 500여 객실 중 400여 개가 비어 있다고 했다.

연쇄 테러가 일어났던 올드마켓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썰렁한 시장 안에는 외국인 몇 명만 어슬렁댔다. 4일 새벽 단식을 시작해야 하는 이집트 주민들만 간단하게 장을 보는 모습이었다. 일부 식당과 상점들은 아예 문을 닫았다. 라마단 장식등인 '파누스' 가게의 무사(27)는 진열된 물건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난해 쓰던 파누스를 다시 꺼내 쓰거나, 아예 등을 달지 않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아요." 무사는 테러 발생 전에 주문해 놓았던 장식등이 거의 재고로 남을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흥이 나야 라마단이죠."

이슬람 세계의 최대 명절인 금식월을 맞이했지만 분위기는 명절과 거리가 멀다. 대다수 무슬림 역시 테러의 피해자였다.

샤름 알샤이크=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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