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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사진 저작권은 진정 없는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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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손 대신 발이 부르트도록 대상을 찾아다닌다.”

 수년 전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65)에게 사진 잘 찍는 법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30대 때부터 전통에 관심을 갖고 간송미술관을 10여 년간 드나들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속에서 소나무를 재발견하곤 1984년부터 소나무를 찍었다.

 배씨의 이 같은 답변이 앞으로도 유효할까. 지난달 4일 서울고등법원은 “솔섬과 같은 고정된 자연물이나 풍경을 대상으로 할 경우 누가 촬영하더라도 같거나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어 그 창작적 표현의 범위가 매우 제한되므로 폭넓은 보호를 부여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풍경 사진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발단은 이랬다. 영국 사진가 마이클 케나는 2007년 강원도 삼척시 속섬을 촬영했다. ‘솔섬(Pine Trees)’이란 제목의 이 사진은 섬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국내에서 케나를 대리하는 공근혜갤러리는 2011년 방송된 대한항공 광고 속 사진이 케나의 ‘솔섬’을 표절했다며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한항공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대상으로 여행사진 공모전을 열고 그 응모작으로 만든 광고”라고 맞섰다. 공근혜 대표는 지난해 3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거듭 패소했다.

 법리적 판단은 끝났지만 의문은 남는다. 솔섬 광고는 원작의 사용 가격이 부담스러워 모작으로 이를 대신하는 편법을 썼다는 의혹을 받았다. 소나무 사진도 2011년 하이닉스 광고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됐다가 배병우 측 항의로 광고가 중단됐다. ‘솔섬 사건’은 이 같은 문제가 처음으로 법정까지 간 경우다.

 국내의 대표적 풍경 사진가로서 배씨는 이번 재판에 주목했다. 항소심에 “저를 모방한 유사 작품이 순수 혹은 광고 작업 속에 등장했을 때, 허탈감이 옵니다. 32년 넘게 소나무와 한국의 풍경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한 작가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라는 자필 의견서를 낸 것도 그래서다. 그가 찍은 소나무 사진은, 경주 왕릉에서 숱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따라 찍은 것과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현재 프랑스 샹보르성을 촬영 중인 그는 “저들이 프랑스에 샹보르성을 찍을 사진가가 없어 내게 의뢰했겠나.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그동안 후발 주자로서 베끼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근혜갤러리는 다음 달 ‘‘흔해빠진 풍경사진’의 두 거장전’이라는 제목으로 케나와 배병우의 2인전을 열고, 두 사람의 대담을 마련한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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