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인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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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도·강간범 3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처음 있는 일은 물론 아니지만 무더기 극형선고는 강력범에 대한 최근의 사법부의 응징적 자세를 보인 판결경향을 나타낸 것으로 주목되고있다.
상습강도범을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에 포함시킨 것은 80년12월 법개정 때다.
법개정 당시에는 극형으로 가중 처벌한다는 경고적 효과 외에는 별로 「실용성」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벌써 몇 번째 실제로 선고가 되고 있다.
81년 5월에도 서울 남부지역에서 강도·강간범에게 사형이 선고된 적이 있었다.
당시 피고인은 약혼자가 보는 앞에서 악랄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등 상습범행이 이유였다.
또 지난 1월에는 같은 서울형사지법에서 유기징역으로 최고형인 징역 25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이때는 강간부분을 피해자가 오히려 부인해 상습강도 상해죄만 적용했던 것.
대검은 지난해 3월 강도·강간범을 「가정파괴사범」이라며 국민의 도의적 관념을 저해하지 않도록 법정최고형을 구형하고 가급적 보호감호까지 청구하도록 지시해 놓고 있다.
재판부는 3명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육체적인 살인보다 더 무거운 정신적인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이들 3명은 결심 때 사형을 구형 받고도 얼굴표정 하나 변함이 없이 태연했고 법정태도도 뉘우침은 커녕 고개를 높이 들고 「당당할」 정도로 죄의식이 없었다.
사형선고 순간에는 어떤 확신범도 주춤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끄떡도 않았다.
법관들이 가장 꺼리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사형선고다. 이날 3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담당 재판부 3명은 모두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가 괴로움을 달랬고 오후 공판은 열지 않았다.
사형제도는 고대 하무라비 법전을 비롯해 모세법·이집트법·그리스법·로마법 등에 이미 나타나 있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토머스·모」 등에 의해 사형 폐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후 베네쉘라를 필두로 오스트리아·콜롬비아·우루과이 등 남미 여러 나라 등 10여개 국이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미국도 72년 연방대법원에서 사형제도는 위헌이란 판결을 내린바 있으나 주단위로 사형이 집행되고 있고, 최근의 여론조사로는 국민들의 72%가 사형제도를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강력사건에 대한 잇단 중형선고는 오히려 범죄의 포악성을 자극해 범죄 예방 효과 보다 더 잔인한 범죄의 재발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사법기관이 극형 쪽으로 기울자 강력사건의 양상은 저항할 기력조차 없는 연약한 아녀자에게까지 「살인 후 증거인멸을 위한 방화」 「확인살인」 등 더욱 악질화하고 있다.
흉악범들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무엇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기를 바라고 있다. 어떤 묘방이 없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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