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2005 광고모델계 상한가 '혼혈' 대중문화 새 코드로 등장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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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게 혼혈은 감춰야 하는 숙명이었다.

혼혈 사실을 6년간 숨겨오다 고백한 탤런트 이유진의 눈물을 기억하시는지.그러나 2005년, 상황은 달라졌다.유행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고, 대중문화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광고계에서는 지금 혼혈 모델이 상한가다.다니엘 헤니가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물꼬를 튼 이래 속속 새로운 얼굴들이 광고계를 비롯해 드라마와 영화계 점령에 나서고 있다. 혼혈 스스로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다니엘 헤니는 한 인터뷰에서 "혼혈은 신의 축복"이라고까지 했다.

'축복'이란 단어에서 자긍심이 묻어난다. 혼혈은 왜 이 시대 대중문화의 코드가 된 것일까.일단 광고계에선 "국내 모델들이 갖지 못한 신비스러운 매력이 있다"고 설명한다."국경 없는 시대에 '글로벌 아이콘'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혼혈, 광고계를 점령하다

요즘 광고계에서 혼혈모델은 섭외 0순위다.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하는 이미지성 광고의 경우는 더 그렇다. 광고대행사 웰콤의 김양훈 상무는 혼혈모델의 매력에 대해 "동서양의 미를 섞어놓은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장 성공한 혼혈모델은 단연 다니엘 헤니다. 다니엘 헤니는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모델료가 10배 정도 뛰었다. 화장품.패션.가전.자동차.항공사 등 거의 모든 업종의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휴대전화 SKY 광고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데니스 오 역시 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모델이다. 그래서 '제2의 다니엘 헤니'라 불린다. 홍콩.대만.싱가포르 등지에서 모델 활동을 하다 국내 광고에 섭외됐다. 최근 김태희와 함께 가전광고에 출연했다. 국내 소속사 '더 모델'의 이현정 팀장은 "다니엘 헤니보다 젊고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TU미디어 광고에서 신비로운 이미지를 발산했던 안젤라는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모델. 최근 에어컨, 고급 오피스텔 광고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케임브리지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일본에서 방송활동 중이다. 광고대행사 TBWA의 박성준 부장은 "TU 광고 한편으로 국내에 안젤라 팬클럽까지 생겨났을 정도"라고 말했다.

SM3 자동차 광고에 반항아적 이미지로 등장하는 다케 야마자키도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모델로, 미국에서 배우.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혼혈모델이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글로벌한 이미지와 친밀감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회적이고 글로벌한 감성이 시청자들에게 친밀감과 동경심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는 것이 광고평론가 김홍탁 씨의 분석이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홍종필 교수는 "신비한 매력이 젊은 소비자들의 가치나 라이프스타일과 쉽게 접목된다"고 말했다.

혼혈모델의 광고출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광고 프로덕션 관계자는 "해외에서 활동 중인 혼혈모델을 발굴하려는 모델에이전시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 드라마.영화 진출도 활발

다니엘 헤니는 내년 봄 방영될 KBS 드라마 '봄의 왈츠'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됐다. 데니스 오도 MBC로부터 특집 드라마 캐스팅 제의를 받은 상태다. 캐스팅이 확정될 경우 혼혈인 주인공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빗 맥기니스는 연말에 개봉하는 액션영화 '태풍'에 장동건의 친구인 해적 역할로 출연한다. 안젤라도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고 있다. 국내 소속사 '샐러드'의 박창완 실장은 "안젤라가 국내 방송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혼혈모델의 잇따른 드라마 섭외는 다니엘 헤니의 성공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라는 게 방송가의 시각이다. 이른바 '다니엘 헤니 효과'다. MBC 이은규 드라마국장은 "배우로서의 다니엘 헤니의 성공이 혼혈모델 기용의 자극제가 됐다"며 "연기만 뒷받침된다면 출연자 다양화 차원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KBS 김종식 드라마 2팀장은 "혼혈 배우가 슬픈 과거를 가진 것으로 묘사됐던 과거와 달리 요즘 드라마에서는 긍정적 역할로 등장하고 있다"며 "혼혈 배우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현목 기자

*** '제2의 다니엘 헤니' 데니스 오

"동서양 절묘한 조화가 혼혈인 장점"

'제2의 다니엘 헤니'로 주목받는 데니스 오를 만났다. 그는 "솔직히 다니엘에 대해 잘 몰랐지만, 한국에서 CF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됐다"며 "나처럼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들어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제2의 다니엘 헤니라는 수식어에 대해 "둘 다 혼혈이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매력이 있지 않겠느냐"며 " 조만간 드라마나 영화로 찾아뵙고 또 다른 면모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에는 자신이 있는가.

"모델 생활을 하면서 연기도 준비해 왔다. 한국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한국말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배역들이 있기 때문에 연기를 하는 데 언어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한국 얘기를 많이 들어 왔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다. 한국에 방문해 가장 먼저 김치찌개를 먹으러 갔을 정도다.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혼혈인 모델의 장점은 무엇인가.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다. 동서양의 매력을 동시에 발산할 수 있는 모델들은 많지 않다."

-한국 드라마.광고의 경쟁력은.

"싱가포르.홍콩 등에서 모델 활동을 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광고가 호평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따뜻한 마음과 정서를 담아냈다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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