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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다역' 연극, 빛나는 두 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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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톱 가수 **의 연기자 변신'이란 말이 흔하게 들린다. 연기인지, 평소 자신의 모습인지 도통 헷갈리는 모습을 몇차례 TV 드라마에 선보이곤 '연기가 참 자연스럽다'란 칭찬을 듣곤 한다. 과연 연기란, 아니 배우란 무엇일까. 이런 흐름에 대한 반발일지도 모른다. 최근 대학로 연극판엔 '1인 다역' 연극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혼자서 한 무대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을 연기한다는 건 '진짜 배우'가 아니고선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는 일. 그래서 1인 다역 연극은 좋은 배우를 가늠하는 척도로, 드라마.영화와 차별화된 연극의 본령으로 평가받곤 한다. 화제가 되고 있는 1인 다역 연극의 주인공들로부터 연기 방법과 고충을 들어봤다.

# 몸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다음달 말까지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주머니속의 돌'은 최근 가장 호평받고 있는 대학로 연극. 강원도 산골 마을에 영화 촬영진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단 두명의 배우가 분장실이 아닌 무대 위에서 모자.손수건.선글라스 등 간단한 소품을 이용, 17명을 연기한다.

특히 9명의 인물을 소화하는 서현철(40)씨의 연기는 압권. 그는 강원도 토박이 갑택을 출발점으로 감독.조감독.김비서 등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여배우 나주리를 뻔뻔스럽게 연기할 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캐릭터들은 어떻게 차별화시킬까. "사람마다 말투가 조금씩 다르거든요.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경우, 끝을 대충 흐리는 경우, 어미를 빨리 당기는 경우 등등."

목소리 톤도 조금씩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목에서 소리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우선은 몸을 달리 써야 해요. 즉 어떤 부분을 긴장시키느냐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는 거죠. 광택의 떨리는 듯한 음성은 온몸을 바짝 긴장시킨 기운이 목끝으로 나오는 것이고, 갑택의 평이한 소리는 온몸에 힘을 빼야 가능합니다."

그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구두 회사 영업 사업으로 일하다 서른살에 연극판에 뛰어든 늦깍이. "연극하기 전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다양한 캐릭터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 몰입하지 않고 거리두기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으로 다음달 13일부터 나흘간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빨간 도깨비'(연출 노다 히데키)에도 1인 다역이 눈에 띈다. 외지에서 온 이방인에 대한 배타주의를 우화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에서 최광일(35)씨는 작업남.마을주민.할아버지 등을 훌쩍훌쩍 뛰어넘는다. "예전에도 1인 다역을 여러번 했죠. 근데 이번엔 목소리가 아닌 움직임으로 인물들을 차별화시킵니다. 대나무를 잡고 있는 모습, 몸을 구부리거나 다리를 저는 식으로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특징을 잡아내는 만큼 2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편의 영화나 연극의 주인공을 오랫동안 연기하다 보면 감정이입으로 그 인물에 빠져든다고들 한다. 어두운 캐릭터 연기를 쭉 하다보면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식으로 말이다. 1인 다역을 하게 되면 어떨까. "극중 인물에 푹 빠져드는 건 '진짜 연기자'가 아닌거죠. 1인 다역을 할땐 더욱 그렇구요. 늘 객관적으로 인물을 바라보다 무대에 오를때 에너지를 쏟을 수 있어야 더 빛나는 거 아닌가요."

문득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없다'란 말이 떠올랐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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