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미국서 MRI 이용 진실- 거짓 99% 판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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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고 있다.

"정말 제가 한 일이 아니라니까요. 믿어주세요."(피의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의자는 계속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에 진위를 알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요청하는 바입니다."(검사)

미래의 어느 날 가상의 재판 장면이다. 앞으로 어쩌면 이렇게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몸 속 종양이나 내출혈 등을 검사하는데 쓰이는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사용하는 생뚱맞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미 펜실베이니아 약대 신경과학 연구팀은 최근 MRI를 이용해 거짓말을 했을 때와 진실을 말했을 때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들을 파악해 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중 한 명인 대니얼 랭글벤 박사는 "이런 방법을 이용해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정확도는 무려 99%에 달한다"며 "앞으로 기존 거짓말 탐지기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거짓말 탐지기는 땀 분비나 심장박동 등 거짓말을 할 경우 일어나는 신체 변화를 감지해 이를 그래프로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잘 훈련받은 전문 테러리스트 같은 경우 땀과 심장박동을 모두 자기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 그 한계가 지적돼 왔다. MRI의 경우 중추신경조직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기에 훈련에 의해 조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만일 누군가 거짓말을 하려 한다면 동시에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므로 뇌는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한다. 반면 진실을 말할 땐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되므로 상대적으로 뇌의 활동량이 적다. 이 미묘한 차이를 MRI로 잡아내 거짓말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험실 안에선 다른 조건이 모두 통제돼 있었으므로 거짓말과 진실 둘 사이만의 비교가 가능했지만 실제 상황에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실직이나 실연, 가족의 죽음 등이 발생할 경우 진실을 말하는 동안에도 여러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거짓말 탐지 분야 전문가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벤더미아 교수는 "자칫 개인 머릿속에 생각을 마음대로 할 자유를 침해당할 우려도 있다"며 윤리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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