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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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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삼성전자가 2012년까지 330억달러(34조원)를 투자해 경기도 화성에 새 반도체 단지를 건설한다. 투자가 마무리되면 기흥-화성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집적단지)가 된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발표한 투자액은 1974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다. 초대형 투자를 통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반도체 업체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다.

◆ 화성을 미래 반도체 '메카'로=삼성전자는 29일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 등 5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화성 2단지 기공식을 했다. 2단지의 규모는 29만 평. 토지공사와 땅값 논란을 벌인 끝에 5월 매입을 완료한 동탄 신도시 내 부지 17만 평이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는 2단지에 차세대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라인 8개(4개 건물)와 미래형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라인 등 총 9개의 라인을 깔겠다는 계획이다. 4개 건물 중 2개는 현재 상용화된 12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보다 큰 16인치 또는 18인치급 대형 웨이퍼 공정이 가능하게끔 라인 규모를 대폭 키울 계획이다.

특히 8600억원을 들여 짓는 연구개발 라인은 미래 반도체 기술 개발의 본부 역할을 하게 된다. 공장과 업무 시설이 혼합된 연면적 3만5000평 규모의 초대형 연구시설로 50나노급 이하의 미래형 반도체 기술과 신공정.신물질을 집중 연구하게 된다.

내년 5월 가동되는 이 연구개발 라인은 삼성전자가 최근 개발에 성공한 50나노 기술보다 앞서는 40나노급 기술 개발과 차차세대 기술로 평가되는 30나노 기술 연구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라인에서는 4기가비트(Gb) 및 8Gb 용량의 대용량 D램, 32Gb 및 64Gb 이상의 낸드 플래시 등 차차세대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업체 간 나노 기술 경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한국형 '실리콘 밸리' 조성=화성 2단지 반도체 9개 라인이 모두 완공되면 기흥(43만평)-화성(1, 2단지 합쳐 48만 평)에 걸쳐 총 91만 평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단지가 조성되게 된다.

연구개발, 생산, 영업, 지원 시설 등 모든 기능이 한 곳에 모여 있어 빠른 의사결정과 시장 대응이 가능해진다. 세계에서 이 정도로 통합된 기능을 가진 반도체 단지는 아직 없다.

삼성전자는 기흥-화성 공장 주변에 장비업체나 재료업체 등 유관산업체도 적극 유치, 용인시(기흥)-화성시를 연결하는 한국형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나간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황창규 사장은 "이번 대규모 투자를 통해 2012년 반도체 매출 610억 달러를 달성할 계획"이라며 "2012년까지 5000여 명의 연구 인력을 비롯해 모두 1만4000여 명의 고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사장은 또 "삼성은 메모리에서는 13년째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반도체 전체로는 인텔에 이어 2위"라며 "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 정상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화성 2단지가 완성되면 삼성전자는 기흥단지에서 가동 중인 메모리-시스템LSI 11개 라인과 기존 화성 1단지에서 가동 중인 5개의 메모리 라인을 합쳐 모두 24개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보유하게 된다.

한편 삼성전자는 선진 반도체 업체 간 공동연구 컨소시엄인 'SEMATECH(세마텍)'에 가입함으로써 인텔이나 IBM,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필립스 등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들과 공동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연구와 개발 활동을 펼쳐 나갈 예정이다.

이현상 기자

우여곡절 추진 과정
수도권 규제법에 1년6개월 허송
"땅값 비싸다" 감사원에 진정서도

삼성전자는 화성 2단지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기까지 수도권 규제와 비싼 땅값 논란 등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삼성전자가 화성 2단지 조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2년 하반기. 그러나 대기업 공장 신.증설을 제한한 수도권 규제 법령에 묶여 1년6개월 가량의 시간을 허송해야 했다. 집적 효과를 위해 삼성전자는 기존 기흥 단지와 화성 1단지 근처에 공장을 짓고 싶어 했으나, 지역 균형 발전 및 수도권 과밀 억제 논리가 가로막았던 것.

삼성전자 화성 공장 증설은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과 함께 수도권 규제의 대표 사례로 꼽혔고, 이 문제는 청와대-중앙정부-지방정부(경기도)-재계 간의 복잡한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이런 논란 끝에 결국 '투자가 최우선'이라는 경제 논리가 힘을 얻어 2004년 초 관계법령이 개정됨으로써 가까스로 증설이 허용되게 됐다.

삼성전자 화성 2단지 기공식에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서 넷째),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다섯째),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여섯째)이 첫 삽을 뜨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규제가 풀린 뒤에는 땅값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탄 신도시에 포함된 산업단지(17만 평)의 매입가가 평당 222만원으로 책정된 것. 삼성전자는 "이런 비싼 땅값을 주고서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지난해 11월 감사원 기업불편신고센터에 진정서를 냈다. 세계 주요국이 국가 전략산업을 위해 땅값은 물론 법인세까지 깎아주는 현실을 돌아보라는 주장이었다. 반면 토지공사는 "이도 기업지원 차원에서 감정가격보다 싸게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5개월 가량의 줄다리기 끝에 선납 할인 등의 조건으로 토지공사의 원안대로 계약하고 말았다. 시간을 다투는 반도체 산업 투자의 특성상 더 이상 착공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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