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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리더' 분식회계로 사의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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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터보테크 장흥순(45.전 벤처기업협회장.사진) 회장이 분식회계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또 터보테크 지분 등 개인 재산 모두를 회사에 내놓기로 했다.

장 회장은 29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7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실을 고백하며 이같이 밝혔다.

장 회장은 이날 2000년 유상증자 때 분식회계를 했다고 털어놨다. 회계장부에서 부족한 부분은 마치 양도성예금증서(CD)가 있는 것처럼 써 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증자에 참여할 때 기존 주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신주를 사들였는데 이후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며 "담보력이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회사 예금을 담보로 맡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주를 팔아서 증자에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대주주가 주식을 팔면 주가가 떨어져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장 회장과 터보테크는 현재 금감원의 특별감리를 받고 있다. 터보테크의 분식회계 혐의는 지난달 금감원의 CD 일제 점검 과정에서 드러났고 터보테크 측은 23일 분식회계를 시인했다.

한편 비상경영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박치민 부사장은 "분식회계 파문 이후 금융권의 부채 조기 상환 요구가 이어지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보가전 사업에서 손을 떼고 보유 자산 매각 등의 자구책을 펼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터보테크는 28일 관계사인 넥스트인스루먼트의 지분 35.85%를 한글과컴퓨터 계열사인 이노츠에 넘겼다. 매각 대금은 127억원이다.

글=최준호, 사진=최정동 기자

*** 벤처 1세대 잇단 불명예 퇴진

장 회장 "벤처에 대한 애정은 지켜달라"

벤처 1세대 경영인들이 불명예 속에 경영 일선에서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2000년 벤처 거품의 짐을 이겨내지 못했다.

벤처기업협회 초대 회장인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은 당시 코스닥 열풍에 힘입어 50여 개의 회사를 설립하거나 투자했으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쓰러졌다. 메디슨이 2000년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업계를 떠났다. 인터넷전화서비스 다이얼패드로 코스닥에서 3700억원을 끌어모았던 오상수 전 새롬기술 사장은 장흥순 터보테크 회장처럼 분식회계를 했다가 사법처리됐다.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 사장, 이 사장의 뒤를 이은 전하진 사장 등도 회사를 떠났고 이 두 사람은 벤처회사를 새로 설립해 재기를 모색 중이다. 장 회장은 벤처업계 리더였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장 회장은 198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과 박사과정 때 컴퓨터 제어 공작기계(CNC) 회사인 터보테크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자금 3억원은 자신의 박사학위를 담보로 은행에서 빌려, 당시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 시작한 터보테크는 17년 만인 지난해 말 기준으로 종업원 1000명, 매출 664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0년 2월부터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에 이어 벤처기업협회 회장직을 맡아왔다. 3월에는 비트컴퓨터의 조현정 회장과 함께 공동회장을 맡아왔으나 최근 분식회계 파문이 일자 이달 초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벤처 1세대 중 남은 사람은 현재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 회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등 일부에 불과하다.

장 회장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낸 지난 5년의 시간은 가시방석 위에 앉아있는 나날이었다"며 "이번 분식회계 파문은 터보테크에 국한된 것이니 한국의 미래를 이끌 벤처에 대한 애정을 계속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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