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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청계천, 좋구나 흐르니 참 좋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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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까짓 여울목 쯤이야. 오랜 세월 막혀 있었기에 청계천 물줄기는 더욱 세차다. 장통교 상류 여울목에서.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소설가 구보씨' 박태원(1909~87년)은 소설 '천변풍경'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코끝은 쨍하게 추워도 볕 드는 곳만은 땅까지 제법 녹아 기분 좋게 질척거리는 겨울날. 손 시린 줄도 모르고 빨래터에 나앉은 아낙네들의 지지배배 즐거운 수다가 작가의 귀를 간질댄 모양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30년대. 그땐 이렇게 청계천이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는, 그래서 꽤 재밌는 곳이었나 보다.

바로 이 모습 그대로 청계천이 우리 곁에 돌아온다. 복원공사를 모두 마치고 공개되는 날이 드디어 내일(10월 1일)이다. 시커먼 아스팔트에 덮여 재미라곤 터럭만큼도 없던 우중충한 공간, 청계천이 옛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박태원의 빨래터'(청계빨래터)까지 만들어 놨다는 1만2000보(步), 5.8㎞ 청계천변. 퐁퐁 빨래 장단은 이제 들려오지 않겠지만 다시 이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 그리고 추억이 쌓여갈 것이다.

다시 찾은 청계천변을 Week&이 먼저 거닐어 봤다. 언뜻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볼거리, 놀거리, 할거리가 지천이다. 광통교터.수표교터.오간수문터 등 되살린 유적들에선 옛 향취가 물씬 풍긴다. 소망의 벽, 문화의 벽, 비우당 터널분수 등 새롭게 지어 올린 조형물들도 산뜻하다. 천안 능수버들길, 충주 사과나무길, 담양 대나무길 등은 청계천 복원이 서울만의 기쁨이 아님을 되새겨주고 있다.

이제 후대의 어느 소설가는 2005년 가을의 청계천을 이렇게 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딴에는 간간이 부는 청계천변 바람이 제법 상쾌하기는 하다. 그래서 이곳, 청계천변에는 볕 좋은 대낮에나, 불 밝힌 밤에나 구경꾼들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글=권근영.이충형 기자<you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지도 크게 보기:709kb>

[길 따라 팔도 구경]

(1) 청계광장

3색 조명의 '캔들분수'와 둥그렇게 배치된 '폭죽분수', 그리고 푸른 조명을 받은 4m 높이의 2단 폭포가 볼 만하다. 바닥은 전국 8개도에서 가져온 돌로 깔았다. 청계천 모형도 있다. 공휴일 차량 출입 금지.

(2) 젊음의 거리

영화관.주점.패스트푸드점 등이 밀집해 있어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분수대와 야외공연장 등은 약속장소로도 좋다. 오전 11시~오후 11시까지 차량 출입 금지. 옛날 철물점이 많았다는 관철동에 있다.

(3) 옥류벽천

과거에 창덕궁 옥류천에서 나와 청계천으로 흐르던 옛 청계천 물길을 떠올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성했다.

(4) 패션천변

다양한 높이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65개가 빨강.파랑 조명을 받아 '색동분수'를 선보인다. 분수 주변에는 야외무대, 천변 스탠드 등 문화공간이 있다.

(5) 오간수문

원래 청계천 물이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인 동대문 옆 성곽에 있던 문이다. 과거의 5개 수문과 아치를 재현했다. 물이 수문 앞 수조에 고여 연못처럼 보이기도 한다.

(6) 황학벽천

옹벽 위쪽에서 물이 넘쳐 벽을 타고 흐른다. 중간 중간 박혀 있는 검은 돌은 청계천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조명이 켜지면 물의 흐름에 따라 음악이 흐르는 듯한 장면도 연출된다.

(7) 비우당 터널분수

물줄기들이 산책로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터널을 만든다. 밤에는 다양한 색상의 조명으로 더욱 신비한 느낌을 준다.

(8) 산철쭉길

경북 영주의 시화(市花)인 산철쭉 5400여 본이 붉은 꽃을 피워 봄의 기운을 북돋운다.

(9) 능수버들길

충남 천안의 명물인 능수버들 16그루가 시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주변 빨래터와도 어우러져 정취를 자아낸다.

(10) 사과나무길

충북 충주의 '대표나무' 사과나무 120그루를 심어놨다. 봄에는 꽃을, 가을에는 잘 익은 과실을 볼 수 있다.

(11) 감나무길

전국 최대의 감 생산지인 경북 상주시의 10~15년생 감나무 90그루가 길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11) 대나무길

높이가 5m에 달하는 전남 담양의 대나무 260그루가 길을 조성해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한다.

(11) 갈대숲

1200여 평 면적에 경남 창녕군의 우포늪과 화왕산의 갈대 3만여 본을 심었다. 주변에 체육시설까지 있어 시민들이 산책을 하기에 좋다. 가을엔 황금빛 갈대숲이 장관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11) 구절초

흔히 들국화로도 불리는 경기도 포천의 시화로 2만여 본을 심어 놨다. 가을을 한껏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12) 시계골목

1500원짜리 어린이용 시계에서부터 예물시계에 이르기까지 각종 시계를 다른 곳보다 30~40% 싸게 살 수 있다. 품질보증서도 발급하고 애프터 서비스도 해준다. 1960년대부터 사과궤짝을 엎어 놓고 중고시계를 팔던 상인이 모였다는 예지동에 있다.

(13) 먹자골목

광장시장 안에 있다. 광장시장은 1904년 문을 연 국내 최초 상설시장. 낮에는 냉면.칼국수.비빔밥 같은 저렴한 먹을거리로 허기를 채울 수 있다. 밤이면 사방으로 뻗은 포장마차에서 족발.순대.빈대떡 등 푸짐한 안주를 놓고 '한잔'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14) 헌책방거리

아동용 서적.전집류.만화책.교과서.참고서.패션잡지.고서적…. 거의 모든 종류의 중고 책이 쌓여 있다. 물론 새 책도 30% 정도 싸게 살 수 있다. 최신 외국 잡지와 전문지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15) 떡볶이골목

사리.만두.계란 등을 골라 넣어 조려가며 먹는 이른바 '즉석 떡볶이'가 일품인 곳. 신당동에 있다. 대부분의 가게가 24시간 영업해 늦은 밤 출출함을 달래는 데 그만이다. 둘이 실컷 먹어도 1만원이 넘지 않을 정도로 싸다. 마복림 할머니집이 여러 가게 중 원조란다.

(16) 애완동물거리

20여 년 전 열대어 전문상가로 시작한 거리다. 현재는 앵무새.토끼 등 20여 종의 애완동물 전문판매점이 모여있다. 수입상이나 농장에서 동물들을 직접 데려오기 때문에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17) 모전교

청계천의 첫 다리. 원형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복원'이라 말할 수는 없다. 1412년(태종 12년)에 세워졌으며 과일을 팔던 모전 근처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18) 광통교

1410년(태종 10년)에 세운 도성 최대의 다리. 어가와 사신 행렬이 지나가는 주요 통로이자 다리밟기.연날리기 등 민속놀이를 하는 장소였다. 계모 신덕왕후가 낳은 형제들 때문에 왕좌에 오르지 못할 뻔했던 인물이 태종. 그는 광통교를 흙다리에서 돌다리로 개축하면서 신덕왕후 능(정릉)의 돌을 뽑아다 교각으로 썼다. 뭇사람들의 발에 밟히라는 뜻이었다. 복원된 광통교는 원래 터에서 상류 쪽으로 150m 옮겨서 지어졌다. 원래 광통교가 있던 자리는 수표교터.오간수문터와 함께 사적 제461호로 지정됐다. 장차 복원할 것에 대비해서다.

(19) 정조반차도(班次圖)

1795년 정조가 부모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이해 화성과 현륭원을 다녀와 만든 8일간의 행차 보고서. 1700여 명의 사람과 800여 필의 말이 행진하는 모습이 63쪽에 걸쳐 그려져 정조시대 왕도 문화의 기풍을 엿볼 수 있다. 김홍도.김득신 등 쟁쟁한 화원들이 공동 제작해 예술적 가치도 높다. 원래 25m 길이인 원화를 확대해 190m, 폭 2m의 도자 벽화로 재현했다.

(20) 수표교터

수표교가 있던 자리. 수표교는 1420년(세종 2)에 세워졌으며, 수표석으로 개천의 수심을 측정했다. 숙종이 사랑을 싹 틔운 장소로도 알려졌다. 숙종은 선왕들의 어진을 모신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처자를 보게 된다. 그가 바로 장희빈이다. 수표교는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고 터에는 교각 일부와 수표석 기초부가 남아 있다.

(21) 하랑교터

하랑교는 1959년 청계천 복개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다리의 기초 부분에 해당하는 돌로 된 구조물이 보존돼 있다.

(22) 효경교터

부근에 맹인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소경다리라고도 불린 효경교는 청계천 복개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기초에 해당하는 석재 구조물이 남아 있다.

(23) 전태일거리

1970년 11월 동대문 평화시장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기념하는 거리다. 평화시장 앞 버들다리(일명 전태일다리) 위에는 전태일의 반신상이 선다. 보도의 일부는 시민들의 친필이 새겨진 동판(23×11.4㎝)으로 깔린다. 동판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쓴 '사람 사는 세상'을 비롯해 '그의 죽음은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다'(소설가 황석영), '공평하고 사심없는 노동을 위해'(한 시민) 등의 글귀가 새겨진다.

(24) 문화의 벽

' 자연+인간+환경'(전갑배),'시각의 미로'(배진환),'별'(장수홍),'중생'(백명진),'생성-빛'(강석영) 등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 5점이 연이어 전시돼 있다. 각각 가로 10m, 세로 2.5m 크기의 도자 타일로 만들어졌다.

(25) 오간수문터

조선 초기 흥인문과 광희문 사이 성곽 아래에 설치된 5칸의 아치형 수문이 있던 자리다. 죄인의 탈출로로 곧잘 이용됐다고 전해진다. 명종 때 임꺽정의 무리도 오간수문을 통해 도성 밖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1907년 헐렸으나 수문의 기초석은 남아 있다.

(26) 청계천 빨래터

복개되기 전까지 청계천변은 빨래하는 아낙네들로 왁자했다. 산책로를 넓혀 다듬잇돌 등을 놓는 등 빨래터를 재현해 서민들의 생활터전이던 청계천의 과거를 보여준다. 빨래는 물론 금지다.

(27) 소망의 벽

서울시민을 비롯해 이북 5도민.해외동포 등 2만 명의 국민이 직접 타일에 그림을 그려 만남과 화합.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의 벽화를 조성했다. 좌우 양안 각 50m 구간에 2.2m 높이로 조성됐다.

(28) 존치교각

기존 청계고가도로의 교각 중 3개가 '개발시대'의 유적인 양 남아 있다.

(29) 청계천문화관

26일 개관했다. 지하 2층, 지상 5층, 연면적 998평 규모로 청계천의 역사와 복원 과정, 현재의 모습 등이 전시돼 있다. 세미나실과 자료실, 회의실 등의 공간도 마련돼 있다.

권근영.이충형 기자

[알면 즐거워]

Q: 청계천 물 어디서 오나.

A: 청계천 상류는 백운동.삼청동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잠실대교 인근 자양취수장에서 퍼올린 9만8000t의 한강물(2급수)과 12개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지하수(1급수) 2만2000t을 합쳐 흘린다. 하루에 흐르는 물만 무려 12만t이다.

Q: 청계천변에 없는 것은.

A: 화장실과 쓰레기통. 자칫 오물이 하천으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설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급한 용무'는 천변에서 올라가 주변 건물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한다.

Q: 천변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은.

A: 복원 구간인 청계광장에서 고산자교까지는 취사와 낚시.목욕.세탁.음주.흡연을 할 수 없다. 또 애견 산책과 자전거.인라인스케이트 타기 등도 금지된다. 서울시는 경비원과 자원봉사자들을 배치,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막을 예정. 서울시의회에서 정한 조례에 따른 것이다. 단, 조례는 권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어 과태료를 물거나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따라서 누가 말리기 전에 자발적으로 조례를 지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수영도 사실상 안 된다. 평균 수심이 40cm에 불과하기 때문. 그러나 천변에서 발을 담그고 노는 것은 괜찮다. 고산자교 하류부터 중랑천에 합류하는 곳까지는 복원구간이 아니라 조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여기서도 떡밥을 쓰는 낚시는 안 된다.

Q: 청계천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는.

A: 기본적으로 1년 365일 24시간 출입할 수 있다. 단, 폭우 등 재해로 출입시 위험할 경우나 시설 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단체 행사를 하려고 하면 출입이 금지된다.

Q: 효과적으로 둘러보는 법은.

A: 서울시에서 마련한 '청계천 도보관광코스'가 있다. 청계광장→광통교→삼일교→수표교→새벽다리→오간수교로 이어지는 1코스(2.9㎞)와 청계천 문화관→두물다리→맑은 내 다리→오간수교로 이어지는 2코스(2.6㎞) 등 '정식 코스' 2개와 '단축 코스' 4개가 있다. 정식 코스에는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외국어별로 문화유산 해설사가 동행해 청계천 다리의 유래와 옛 풍속을 설명해 준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www.sisul.or.kr)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받는다. 02-229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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