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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시대와 싸웠던 민중노래패 바뀐 세상와 다시 화음 맞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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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

다 시사이드

1980년대. 대학은 노래를 낳는 요람이었다. 84년 서울대 메아리, 이화여대 한소리, 고려대 노래얼, 성균관대 소리사랑 등이 구성한 노래패 모임 '새벽'을 중심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이 탄생했다. 노찾사의 대표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광야에서''사계''사랑노래''임을 위한 행진곡' 등은 저항가이면서 당대 히트가요였다. 20여 년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고 대학도 바뀌었다. 그리고 노래도.

샐러리맨.엄마아빠 되어 20주년 콘서트 연다는데 …

#노.찾.사, 다시 세상 속으로

서울 상도동 상도교회. 매주 화.목.토.일요일 저녁이면 노랫소리가 이곳을 가득 채운다. 다음달 8일 오후 4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릴 '노찾사 20주년 콘서트(1544-1555)'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노찾사는 활동을 재개한다.

"가사 다 외우고 있지? 자, 하나둘셋넷!"

신지아(86학번.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강사)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익숙한 노래들이 이어진다.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들. 따라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할 정도로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린다. 97년 세실극장 단독공연을 마지막으로 8년여 만에 다시 합창을 시작한 이들의 기분도 비슷하단다.

"좋은 목소리를 가진 분들과 뜻을 같이했던 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신지아)

"노래를 하다 보니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어요. 20대 초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열정을 갖고 노래했죠. 자의든 타의든 많이 잊고 살았는데…."(조성태.90학번.번역가)

노찾사 20년, 노래처럼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순간 침묵이 흐른다. "우리가 부른 노래가 워낙 다양하다"는 조성태씨의 농담으로 분위기가 일순 풀린다.

이들이 다시 모인 건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안고 치유하는 이 시대의 음악을 찾고 싶어서"다(한동헌.노찾사 대표). 그러나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싶은 열망'이 앞섰단다. 그렇다면 그 시절 그들이 찾으려 한 건 노래였을까, 운동이었을까.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내부적으로도 논의가 많이 됐죠.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열린, 나쁘게 말하면 잡탕 집단이었어요."(한동헌)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욕도 많이 먹었다"고 문진오(85학번.가수)씨는 기억한다. '합법적인 첫 민중가요 앨범'이란 타이틀은 운동권 내부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느 노래패와 달리 전문성과 대중성을 추구한 것이 노찾사에게 끈질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당시엔 암울했어요. 그때 대학에 다닌 게 억울해요. 시대에 따라 고민이 다르다는 걸 감안해도, 요즘 학생들의 자유로움과 풍부한 감정 표현이 부러워요."(최문정.84학번.주부)

양아치 노래라고 동아리방도 못 얻다 앨범 내기까지 …

#'다 시사이드' 첫 음반에 녹아있는 것은

노찾사가 자연스레 활동을 멈춘 98년께. 대학 첫 흑인음악 동아리인 중앙대 'DaCside(다 시사이드)'가 창립됐다. 자유롭게 노래하고 신나게 공연했다. 노찾사가 짊어졌던 시대의 무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고민이 없었을까.

"학교 전체의 탄압을 받았어요. 종교 동아리들이 '힙합은 악마의 음악'이라고 비난했죠. 양아치 노래를 한다며 다른 노래패들도 경계했어요. 행사 포스터가 갈가리 찢기곤 했죠."(오승교.99학번)

공식 동아리가 되려면 전체 동아리 회의의 투표를 통과해야 했다. 번번이 미역국을 먹었다. 당연히 동아리방도, 공식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학교 행사가 있을 때 궂은일은 도맡아 했다. '힙합=양아치'라는 편견을 지우기 위해서다. 결국 학내에서 최다 관중 동원력을 자랑하게 됐다. 동아리 설립 5년 만인 2003년, 드디어 정식 동아리가 됐다.

스토니스컹크의 스컬, 허니패밀리의 미료, 스나이퍼와 배치기의 객원 싱어 AG, 여성 래퍼 예솔, 재즈 보컬 남예지, 2004 아테네 올림픽 공연 사절단 '다이나믹 코리아' 등이 이 동아리 출신이다. 그리고 최근 다 시사이드는 동아리 이름으로 '다이비(deieb)'란 흑인음악 레이블을 만들어 첫 앨범 '엠아이시올로지(Mic-ology)'를 냈다. 어느 정도 음악적 수준을 이룬 초기 멤버 17명이 참여했다.

"우리가 8년간 이뤄놓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마추어가 아니란 것도 증명하고요."(이준호.98학번)

앨범 제작에는 300만원이 채 안 들었다. 학생들이 사비를 털어 모으기엔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진짜 DIY예요. 직접 곡 쓰고, 녹음하고, 믹싱하고…. 아는 사람 소개받아 밥 한 끼 사주고 재킷이랑 사진도 해결했고요. 홍보에 관심 있는 친구가 직접 음악 기자 리스트 뽑아서 보도자료 보내고…."(박경용.99학번)

음반엔 이들이 8년간 해온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학교에서 심지어 '마약을 한다'는 오명까지 써가며 고생했던 이야기부터, 음악과 취업 준비의 갈림길 앞에서 갈등하는 이야기, 한국 힙합에 대한 이야기, 인터넷 불법 공유의 문제점까지.

"대학 동아리라 해서 사회적인 주제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진 않아요. 우리의 목적은 음악 자체니까요. 하지만 각자 하고 싶은 걸 노래하다 보니 대학생의 고민,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저절로 나와요."(권재현.98학번)

글=이경희,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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