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조응천·김학의·채동욱 … 대형사고 주역 '검찰 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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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 묘한 징크스가 생기고 있다. 검사 출신이 대형 인사사고를 잇따라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법치’와 ‘원칙’을 중시하면서 법조인, 특히 엘리트 검사 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발탁해왔다.

 청와대와 내각을 이끄는 양대 컨트롤타워인 김기춘(76·고등고시 12회)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홍원(71·사시 14회) 국무총리가 모두 검사 출신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의지하는 법조인, 그중에서도 검사 출신에게서 각종 스캔들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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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김기춘 실장의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 지시를 거부하며 사직서를 던져 ‘항명(抗命) 사태’ 파문을 일으킨 김영한(58·사시 24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바로 김 실장의 계보를 잇는 ‘검찰 공안통’ 출신이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느니 차라리 사퇴하겠다”는 그의 태도에 대해선 여당 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윤회 동향보고 문건’ 파문으로 정국을 뒤흔들어 놓은 조응천(53·사시 28회)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또한 수원지검 공안부 부장검사를 거친 검찰청 인맥이다.

 조 전 비서관은 재직 중 사적으로 대통령기록물인 청와대 내부 문건을 박지만 EG 회장에게 유출시킨 데 이어 정윤회 동향문건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워 여권 인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성접대 의혹’에 휩싸여 논란 끝에 2013년 3월 사퇴한 김학의(59·사시 24회) 전 법무부 차관, ‘혼외자’ 논란으로 2013년 9월 검찰 수장에서 물러난 채동욱(56·사시 24회) 전 검찰총장은 검찰 수뇌부였다. 채동욱·김학의·김영한 3인은 사시(24회)와 사법연수원(14기) 동기이기도 하다.

 판사 출신 가운데도 인사사고는 있었다.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부동산 문제 등으로 검증 도중 낙마한 김용준(77·고등고시 9회)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박 대통령과 기초연금을 놓고 의견 마찰을 빚다가 2013년 9월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스스로 던진 진영(65·사시 17회) 새누리당 의원이 판사 출신이지만 정권에 부담을 준 정도는 검사 출신에 비하기 어렵다.

 특히 공직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민정수석실에서 연거푸 혼란이 시작되는 것에 대해선 여야 모두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콩가루 청와대”(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라는 비판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뭐라고 할 말이 있겠느냐”며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김영한 항명 사태와 조응천 전 비서관의 문건유출 사태에 대해선 박근혜 정부 들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는 정권 내부의 불통 문제가 우선적 원인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할 기회가 많지 않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일방향의 지시 문화가 자리 잡다 보니 누적된 불만이 어떤 상황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기본적으로는 검찰 특유의 조직문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사 출신은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특유의 행동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며 “조직보다 자기 자신의 원칙과 명예를 매우 중요시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한 전 수석은 지난 9일 항명 당시 “국회에 나가느니 차라리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주변에 “사퇴가 내 자신과 내 직(職)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정부에 부담이 되느냐 아니냐 보다 자신의 명예를 우선시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현 정부는 ‘그룹싱킹(집단사고)’이 안 되고 있다”며 “중요한 결정이 일방향으로 나오니 각종 오해와 억측이 청와대 내부와 고위직에서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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