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정부 화재 참사 … 소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안전한 곳이 없다. 주말 느긋하게 늦잠을 청할 시간에 1층 주차장에서 난 불로 10층 아파트와 그 옆의 고층 아파트 주민들까지 불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불길은 외벽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 다. 건물 외벽은 스티로폼에 얇게 시멘트를 발라 붙여 불길이 닿자 유독성 땔감으로 변했다. 애초 화재에 취약한 이 건물엔 초기 진화 장치인 스프링클러가 어디에도 없었다. 아파트 간 간격은 1.5m. 불길은 쉽게 옆 동으로 건너가 옮겨붙었고 건물 뒷벽을 타고 거세게 번졌지만 뒤쪽으로 철도와 붙어 있어 소방차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난 10일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로 4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12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안전에 대한 무방비가 대형참사로 이어진 어처구니없는 도시형 재난이다. 가연성 자재로 지은 고층 건물에 소방시설은 전무한데 소방차 진입로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 건물에 화재가 나면 곧바로 옮겨붙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렇게 생활안전 관련 조치가 없는 건물이지만 불법은 아니다. 10층 이하 건물은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규정이 없고, 공동주택 외벽에 난연성 자재를 사용하라는 규정도 없다. 상업지역 주상복합건물은 토지경계에서 50㎝만 떨어져 있으면 된다.

 문제는 대봉그린아파트와 같은 도시형 생활주택이 전국 도시에 우후죽순으로 늘어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만 10만 가구가 넘고, 박원순 시장은 20만 호 추가 공급을 약속하기도 했다. 전·월세 대란에 2009년 규제를 대폭 완화한 근거 법령이 마련되면서 값싼 서민형 주거공간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값싼 주택 공급을 위해 소방·주차시설 등의 의무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안전 규제마저 풀어버림으로써 수십만 명의 거주자가 안전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안전은 우리 사회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곳곳에 구멍은 뻥뻥 뚫려 있다. 포기해선 안 되는 기본적 안전 규제에 대해서도 들쭉날쭉한 기준을 적용한다. 안전에 대한 관공서의 인식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이번 화재사고는 말로만 안전을 외치며, 실제로 안전사회를 만드는 일엔 손 놓고 있었던 우리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젠 수십만, 수백만 명의 생명이 걸린 주택안전 문제부터 다시 찬찬히 뜯어봐야 할 때다. 기존의 허술한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고, 이미 지어진 건물이라도 기본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또 안전은 규제만으로 확보할 수 없다. 지나친 규제는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규제를 줄이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줄어든 규제만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우리 사회 모두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마저 손을 놓는다면 우리 스스로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사회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