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5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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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요강을 훔체다가 새끼줄을 꿰선 그걸루 징을 삼는데, 한 번씩 치면 지잉 지잉 지잉 한다구. 그거이 그냥 징을 때리는 거이 아니야. 수백 년 묵은 머슴의 한으루 지주년의 살찐 볼기짝을 때리는 거이야. 지잉 지잉 징, 이거이 소리 깊은 징 소리디. 한쪽에선 햇보리 베어가주구 보리타작이 시작돼. 거저 우람한 웃통 벗어제끼구 도리깨를 휘둘러 보릿짚단을 후두려 패는데, 옹헤야 옹헤야 옹헤야 소리가 절루 나오디. 기건 그냥 땅바닥을 때리는 거이 아니라 마름놈 지주놈에 해골박을 까는 신명이야. 옹헤야 옹헤야 옹헤야 이런 신명판이 어디 있가서. 비오듯 땀이 나구 보리 까스름이 날라와 붙디. 일 끝나구 멱 감으멘서 냇물에 채워둔 항아리에 시언한 막걸리 한사발 주욱 하디. 한켠에선 누렁이를 잡아 불에 끄슬려. 아아 기럼 그놈에 구신은 누가 먹느냐?

-선생님, 구신이라뇨?

-개, 구에 신…. 거 만년필이라구 하문 알아 듣가서?

-아 예에.

-누가 먹을디 힘자랑으루 넘어가는 거이야. 으랏차차차 차아, 씨름판이 벌어져. 풍물을 폭풍처럼 후두려 때린다. 쟁가쟁가 쟁가쟁, 이거이 문화야, 알가서? 아 목마르다. 야 거, 홍익회 지나간다.

그러면 나와 채희완은 백기완이 라디오를 꺼버릴까 봐 얼른 열차 통로로 지나가는 홍익회 행상을 불러 우선 맥주 다섯 병에 오징어 한 마리를 시킨다.

그런 식으로 그의 '장산곶 매' 전설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 숙취의 새벽에 문득, 바로 그런 분위기의 줄거리를 엮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선 날이 밝자마자 정석종을 만나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사실은 북쪽의 민담인 장산곶 매와 나중에 남도로 내려가서 화순 운주사의 '미륵 와불' 전설을 대하소설 '장길산'의 서장과 종장으로 삼게 된다. 칠십 년 대 중반까지만 해도 운주사는 거의 버려진 폐허였고 그곳을 아는 이들도 별로 없었다.

팔대 명산의 하나이며 태고적 단군의 도읍지인 구월산은 그 줄기가 남서쪽으로 우회하여 추산을 따라 불타산에 이르고, 막바지로 그친 곳에 장산곶이라는 험한 해안 마루턱이 있으니 옛노래에,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님 만나보겠네

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서낭님 조른다

하던 곳이 그곳이다. 그곳에 지방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기록하였으되.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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