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슈테른지 「히틀러일기」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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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슈테른지가 25일 일부내용울 공개,영국과서독에서 진위논쟁을 불러일으키고있는 「히틀러일기」는 주로 그의 개인생활과 측근인물과의관계를 묘사한 단편적 일화가 주류를 이루지만 이중에는 그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부분도 엿보인다.
초기 유태인 박해에 관한 부분울 보면「히를러」는 과격한 가해를 하지말도록 희망했던듯한 인상을 주는 부분도있다. 1938년11월9일 베를린에서 나치돌격대를 비롯한 폭도들이 7천여개소의 유태인상점을 습격, 파괴한 사실을 두고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있다.
『유대인에 대한 반대운동 확대문제에 관해「괴링」「괴벨스」등과 얘기했다. 그렇다고 열성분자들에 의해서 경제에 피해가 가서는 안되는데 이미 수백만금이 파괴됐다. 몇곳에서는 유태인이 구타당하고 자살했다는 보고다. 이사람들이 미쳤나, 외국에서뮈라고 말할까. 곧필요한 조치를 내려야겠다』(38년11월10일).
독일군 점령지역의 폭동진압에 대해서는 처음에 잔혹한 행위를 하지말도록 지시한것처럼돼있다. 1929년 폴란드를 침공한뒤『시민들에 대한 탄압은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는 부분이 그런 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뒤인 1942년 체코점령군 사령관이 암살되고나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본보기를 보여야겠다.철저한 보복조치를 취해야겠다』 (42년 5월31일). 그리고나서는 민간인 인질에 대한 총살명령이 내려지고 러디스라는 마을의주민들이 모두 살해되는 한편 마을은 잿더미가 돼버렸다.
유고슬라비아에서 게릴라활동이 증대되자「히틀러」의 화샅은 나치친위대장 「히믈러」 에게돌아간다. 『게릴라들이 이처럼 극성을 부리게놓아둬야하나,이런건「히믈러」가 처리할 일인데 그는 별천지에살고있다』(43년6월17일).
나치친위대와 함께 「히를리」 주변권력의 쌍벽을 이루었던 나치돌격대(SA)대장「에른스트·뢴」에 대한 처형명령은「히틀러」의 냉혹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가된다.
친위대장 「히믈러」와의 권력투장으로 「철전지원수」 관계에있던 「뢴」은 34년 쿠테타를 계획했다는 친위대의 보고에따라 체포됐다. 이에대해 「히틀러」 는「뢴」의 공로로보아 가혹하게 처벌하고 싶지않다.그가 나를 배반하고 속인 사실이 조사결과 드러났기 때문에스스로 속죄할 기회를 주었지만 너무비겁했다. 그래서 총살하도록 명령했다』 (34년7월3일) .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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