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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OFF, 우뇌 ON’ 야광 포스터, 셧다운보다 큰 효과 기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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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06면

서울 연희동 ‘노아스 로스팅’ 카페에서 LOUD팀이 ‘Wifi Free’가 인쇄된 투명 책받침 재질의 플라스틱 스마트폰 모형을 설치하고 실험하는 장면. 친구끼리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사진 ①)

스마트폰은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고 할 정도로 우리 생활에 필수품이 됐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또 어떤가요? 산업 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하면서 미래 신성장 동력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려고 모여 앉았는데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상황, 한 번쯤 겪어 봤을 겁니다. 참혹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 문제도 심각합니다.

[작은 외침 LOUD] ② 인터넷 중독 막는 아이디어

LOUD팀이 고안한 ‘우뇌 살리는 야광 포스터’를 벽에 붙여놓고 실험하는 모습. 한 청소년이 방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상태에서 불을 끄자 벽에 붙인 포스터에서 ‘당신의 우뇌를 살려주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뇌 그림이 나타났다(사진 ③).
사진 ②는 불 끄기 전의 포스터 모습. 우뇌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강영호 작가, 중앙SUNDAY 포토콜라보레이터]

강제적 셧다운제는 갈등만 유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정부가 나선 적이 있습니다.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강제로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대표적이죠. 반짝 여론에 휩쓸려 2011년 국회가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후 게임업계가 반발하고 청소년과 부모들마저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안이라며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모호한 규제 기준도 도마에 올랐죠. 결국 이를 추진했던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9월 선택적 해제 조치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셧다운제를 사실상 폐지했습니다.

중앙SUNDAY 신년 기획 LOUD는 거창한 사회 변혁이 아닌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을 추구합니다. 지난주 흰색 테이프 몇 조각으로 버스 정류장 혼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데 이어 이번 주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독을 빼듯 인터넷 관련 기기 사용을 줄이는 일)에 도전했습니다. 게임 중독 문제도 ‘밤에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못하게 하겠다’는 강제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게임을 많이 하면 뇌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메시지를 담은 야광 포스터를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밤 늦게까지 게임에 몰두한 뒤 불을 끄고 눕는 순간 우뇌가 살아나는 모습의 선명한 야광 포스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③ 참조)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깜깜한데 은은한 초록빛으로 ‘너의 우뇌가 살아나고 있다’고 일러주니 눈길이 가죠. 청소년들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는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스마트폰 이용이나 온라인 게임, 동영상 시청 같은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이 좌뇌만 자극해 우뇌의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에서 착안했습니다. 이런 우측 대뇌 지연 현상은 산만하거나 충동성 과잉 행동을 보이고 사회성이 부족해지는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고 합니다.

LOUD를 기획한 광운대 이종혁 교수팀에 따르면 포스터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데 장당 1만5000원 정도 들었습니다. 포스터를 디자인한 김해인(23·성신여대 4학년)씨는 “인터넷에 중독되는 걸 막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불빛이 꺼지는 순간 우뇌가 활기를 띠는 모습을 고안했다”고 말했습니다. 셧다운이라는 부정적 어휘로 강압·강제적인 제재를 가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온라인 게임의 폐해를 상기해 보자는 인터넷 다이어트 운동입니다.

프리 와이파이 vs 와이파이 프리
마주 보고 앉아있는 친구와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세상입니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나누는 대화가 줄어들었다는 의미겠죠. LOUD는 자기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장소 중 하나인 카페에서 어떻게 하면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봤습니다. 우선 사람들이 디지털 세계로 진입하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면 다들 ‘프리 와이파이(free wifi)’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와이파이 이름과 비밀번호를 묻더군요. 그래서 프리 와이파이라고 쓰여진 알림판에 ‘와이파이 프리(wifi free)’라는 문구를 새겨 넣기로 했습니다. 공짜 와이파이 vs 와이파이(인터넷) 청정지역. 단어를 앞뒤로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됐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곳에 와이파이 프리라는 문구를 써 놓음으로써 디지털 디톡스의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 것입니다.

LOUD팀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카페를 돌며 협조를 구했습니다. 대로변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골목 안 작은 카페들은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서울 연희동의 ‘노아스 로스팅’이 대표적입니다. 메뉴판과 계산대 공지 화면 등에 ‘프리 와이파이’와 ‘와이파이 프리’를 병기하고 있습니다. 이 카페의 조형익 실장은 “카페 문화에 걸맞은 아날로그적 분위기를 만들고 디지털 디톡스의 취지에 공감해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연희동 노아스 로스팅에 가면 와이파이 프리라는 메시지가 있더라’는 입소문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고객들의 반응도 괜찮습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볼 때 와이파이 프리 메시지가 동시에 표기된 이미지를 보여주면 신기해하며 취지를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취지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많고요. ‘이게 뭐지’ 하며 한번쯤 와이파이 프리의 취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LOUD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봅니다.

LOUD는 또 노아스 로스팅의 협조를 얻어 카페 테이블 한 곳에 투명한 책받침 재질의 플라스틱 스마트폰 모형을 설치했습니다. 투명해서 앞사람과 서로 쳐다볼 수 있는 이 모형에는 ‘wifi free,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내 앞의 사람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대화를 시작해 보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를 스마트폰 모형에 적어넣은 역발상, 신선하지 않나요? LOUD는 현재 그 스마트폰 모형에 볼록 또는 오목렌즈를 삽입해 앞사람 얼굴이 더 선명하게 또는 우스꽝스럽게 비치도록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꽃 피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겠죠? 적어도 스마트폰 모형을 만져보고 서로를 투영해 보는 행위 자체가 와이파이 프리라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불을 켰을 때와 껐을 때 ‘우뇌 살리는 야광 포스터’의 내용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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