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사합의 거부한 현대중 조합원의 '위기 둔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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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현대중공업 노사가 7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임금과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 결국 조합원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반대 66%로 부결된 것이다. 노사는 이번 합의안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70차례 이상 협상을 벌였다. 진통 끝에 만들어낸 고육책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은 노사 모두에게 득이 될 게 없다. 현대중공업이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제 겨우 논의가 시작된 노동개혁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이기도 하다.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분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기본급 대비 6.5% 인상을 요구했으나 2% 인상안이 도출됐다는 것이다. 회사가 흑자를 내고 경기가 좋으면 이에 상응해 임금을 올려주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현대중공업의 상황은 어떤가. 지난해 3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기업가치를 보여주는 주가 역시 급격히 떨어졌다. 세계 조선업의 장기침체와 더불어 중국·일본 업계의 협공까지 받아 현대중공업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위기 상황에서 노사 대표가 마련한 합의안을 조합원들이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은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다.

 현대중공업은 건강한 노사합의 전통을 가진 회사다. 지난 19년간 파업 없이 협상을 마무리해온 대표적인 무분규 사업장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지난해 20년 만에 파업을 벌이면서 사측을 압박했다. 그 결과물이 이번 합의안이었다. 과거 노사화합의 전통을 되살려 협상을 무사히 마무리할 것이라고 봤다. 부결 사태는 현대중공업 노사에 대한 사회의 기대감을 무너뜨린 행위다.

 마침 노동시장의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노사정위원회 회의가 어제 시작됐다. 임금구조와 고용여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활로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개혁의 주요 대상이자 주체는 대기업 노조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현대자동차 같이 근로조건이 나은 몇몇 회사만 쳐다볼 게 아니라 조선업과 한국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