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입국」의 지름길은 인력개발|우리 과학기술의 현주소와 장래<본사, 관련자 설문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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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본사, 과학부는 제l6회 과학의 날(21일)을 맞아 우리 과학기술의 현주소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 문제점은 무엇인가 등을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학계·연구소·정책 부처·민간부문에서 중견(평균 연령 40대)이상의 역할을 맞고있는 2백 명에 설문지를 돌려 그 중 l백37장을 회수, 응답을 취합했다. 이들의 응답이 전체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전체적인 성향을 파악할 수는 있다고 여겨졌다. 대상자들의 주요 직책은 이공계 대학교수·박사급 연구원·국장급 공무원·민간기업의 부장급 이상 기술개발 관련자였다. 설문지는 모두 12문항으로 한 문항에는 4∼5개의 답을 제시했는데 이와 다른 의견을 위해서 반드시 「기타」의 답항을 두어 자유롭게 응답하도록 했다. 각 문항은 편의상 비슷한 주제끼리 묶어 4개의 항목으로 분석됐다. 항목은 「기술개발의 전망」·「연구자의 당면과제」· 「과학기술자의 만족도」· 「영재교육과 저변확대」로 주제가 붙여졌다. 문항은 간편한 평면적인 통계처리를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였다. 이 해석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은 물론이다. <편집자 주>

<기술개발 전망>
80년대 말까지 기술 선진수준에 이를 수 있는가를 묻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3·7%는 획기적 정책변화 없이는 80년대 말에도 기술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것은 정부가 80년대 말에는 일부 부문에서 기술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학계와 연구소 응답자들은 90·7%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유로는 전체의 43·7%가 『예산규모 등 현재의 투자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또 32·5%는 기술선진국과의 심한 격차를 단시간 안에는 메우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과학기술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31·3%는 인력개발을 들었다. 다음 22·9%는 지금의『기술개발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 문항에서는 두세 가지씩 답한 사람도 있었는데 3가지 이상을 표시한 것은 통계에서 제외시켰다.
순위별로 보면 ①인력개발 ②기술개발 체제개편 ⑧기업 기술개발 지원(l6%) ④과학기술인 대우 개선(16%) ⑤기초과학 투자(13·9%)로 나타났다.
기관별로 보면 민간과 출연연구소에서는 체제개편이 첫째였으나 학계에서는 인력개발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드려나 대조를 보였다.
두 가지 경향을 종합해 볼 때 전체적으로 현재와 같은 투자규모나 체제로는 획기적인 기술개발을 할 수 없다가 의견이 일치하는 경향이다. 즉 대폭적인 투자로 인력개발을 하지 않으면 정부가 계획하는 기술수준은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의 의견은 선진수준화가 가능한 쪽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책입안자와 연구자들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응답자는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의식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과거의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이 많았다. 즉 과학기술의 경제성장 기여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그저 그렇다」와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가 63·8%를 차지해 과거의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을 이끌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 『장래 국내산업을 주도할 3개 분야가 무엇이냐』는 문항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반도체 및 컴퓨터산업(전자산업)을 들었다. 다음이 기계분야였고 세 번째가 시스템 산업이었다. 시스템 산업은 일종의 컴퓨터 이용기술을 말하는 것이다. 네 번째가 에너지 기술개발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 컴퓨터 분야는 응답자의 95%가 장래의 선도산업으로 꼽아 이 분야의 투자와 발전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한펀 민간기업의 기술개발 의지는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나라 기업체가 안고 있는 기술개발의 가장 큰 저해요인은 기업들이 『장기적인 기술개발 계획이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전체의 46·2%인 국내기업들이 장기적인 투자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어 기술개발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또 41·0%는 『경영자들이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해 주목을 끌고 있다.

<직업의 만족도>
하고 있는 일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들은 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체적으로 자기 일에 만족하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이 자기와 같은 전공을 택한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48·1%가 자신의 지금 직업에 대해 만족은 안 하지만 일생동안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단히 만족한다」는 31·9%로 나타나 우리 나라의 과학 기술인이 자신의 직업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직장을 옮기고 싶다는 사람도 14·l%나 됐다.
특히 실제 현장에서, 연구하는 기관에서 불만족도가 심했다. 이런 결과는 기술개발 정책을 추진하는데 큰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만족과 불만족의 비율을 보면 학계가 16대24, 민간이 10대21, 출연 연구기관은 11대26에 달했다.
특히 국내의 연구개발을 이끌어 가고 있는 출연 연구기관의 핵심 연구원들이 압도적으로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어딘가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일부 연구기관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대학이나 기업체로 빠져나가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앞서 나온 연구개발 상의 애로점과 결부시켜 이들의 불만을 점차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영재교육|학계선 〃문제점 많다〃 부정적 견해>
과학 영재교육에 대해서는 응답기관에 따라 견해가 크게 엇갈렸다.
『과학 영재교육이 바람직하냐』는 물음에 대해 『바람직하다』가 전체의 67·5%로 우위를 차지하지만, 학계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압도적이다. 학계는 『바람직하다』와 『바람직하지 못하다』가 13대26으로 나타났으며, 민간은 37대4로 과학 영재교육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교육기관인 학계에서 영재교육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을 잘 알고있는 교육기관에서 과학 영재교육에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기관에서도 『바람직하다』와 『그렇지 않다』는 것이 24대13으로 나타났다.
영재교육이 안고있는 가장 큰 미비점은 「커리쿨렴 미개발」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의 39·6%가 이 점을 지적했다. 다음이 교사 부족과 영재선발의 문제였다.
학계에서는 이런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 그대로 있는데도 과학 영재학교를 시·도에 하나씩 세우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보는 것 같았다.
한편 과학 기술인의 78·2%는 자신들이 초·중·고교시절에 흥미를 느껴 전공을 택했다고 답해 과학고교 설립이 너무 빨리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해주었다.
이 가운데 17·6%는 지금의 전공이 어려서부터 꿈이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이밖에 우리 나라 국민이 과학기술을 무시해온 전통 때문에(39·6%) 과학기사나 책을 읽지 않는다며, 거기에 읽을만한 책이 없는 것도(40·3%)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당면 문제|투자 인색…연구요원 확보 어려워>
우리 나라의 연구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일까.
설문에서는 5가지의 애로를 제시해 보았다. 연구비·연구요원 부족· 시설문제· 대우소홀· 기타였다.
이 가운데 똑같이 34·8%로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 「연구비 부족」과 「연구조직 및 시설 불비」였다. 「연구요원 부족」은 21·3%로 세 번째를 차지했다. 「대우소홀」은 전체의 9·0%였다.
이 애로사항은 기관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 흥미를 끈다.
응답자가 주로 대학교수인 학계에서는 「연구비부족」과 「연구조직 및 시설 불비」 두 가지만 23대22로 나타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도 위의 두 가지가 15대14로 압도적이었으나 「연구요원부족」과 「대우소홀」도 8표와 6표로 전장에 비해 적지 않았다.
반면 민간 쪽은 45표 가운데 20표가 「연구요원 부족」을 당면한 애로사항으로 들고 있으며, 「연구비부족」과 「연구조직 및 시설 불비」는 10표로 나와 학계나 연구소와 좋은 대조를 보였다. 이것은 민간 연구소들이 연구인력 확보가 안돼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것은 항목에는 없지만 많은 응답자들이 지적한 한국적인 현실이었다. 그 예로 ▲과도한 강의시간 ▲연구 이외의 업무에 시간낭비 ▲시약 하나 구입하는데도 2∼3개월씩 소요되는 실정 등이 있었다.
이밖에 우리 나라 과학기술인과 기술선진국의 연구원과 비교했을 때 가장 뒤진 점은 무엇이냐는 문항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결과가 나왔다. 이때 주어진 답은 ①창조적인 사고가 떨어진다 ②연구경험이 부족하다 ③실험능력이 떨어진다 ④연구보다는 장 자리 지향형이다 ⑥하고자하는 의욕이 약하다의 5가지. 이 답항 중 36·5%로 수위서 차지한 것이 ②번 답항. ④번 답항은29·2%로 지적됐다. ①번 답항은 19·7%로 세 번째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응답률은 국내의 과학기술자들이 연구 투자의 부족으로 충분한 연구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고, 이것이 연구보다는 직위에 눈을 돌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또 질이 낮은 이공계 전공자들을 양산하는 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장재열·이덕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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