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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으로 시작된 단원고 졸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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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슬픔에 주저 앉았던 그 봄에 굳건하고 듬직하게 기둥이 되어준 선배들이 있었기에 거센 파도 같았던 올해 봄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생존 2학년 최민지 양이 3학년 선배들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최 양은 9일 오전 단원고 4층 강당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선배에게 쓴 편지를 대표로 읽었다. 최 양은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최양은 “학교의 울타리를 떠나는 선배들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하고 그 빈자리를 저희들이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지만 전통을 이어가기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다”며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이날 졸업식의 시작과 끝은 2학년 생존학생들이 채웠다. 졸업식에 앞서 세월호로 희생된 2학년 학생을 위한 묵념이 있은 후 2학년 여학생 33명이 무대로 나와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합창을 했다. 가수 이선희의 ‘인연’을 화음을 넣어 불렀다. 곡이 끝났을 때 일부 여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았지만 이내 밝게 웃었다. 이어 뮤지컬 그리스의 ‘We go together’를 율동과 함께 불렀다. 학생들은 노래가 끝날 무렵 ‘졸업축하해요♥’라고 쓰인 종이를 들어 보였다.

마지막은 2학년 남학생들이 맡았다. 지휘자를 포함해 18명 학생들이 인순이의 ‘아버지’를 불렀다. 노래가 끝난 직후 “졸업축하드립니다”라며 환호성을 지르는 반전을 선보이며 무대를 빠져나갔다.

2학년 후배들의 공연을 지켜보던 3학년 졸업생들은 힘찬 박수를 치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3학년 오규원 학생은 답사를 통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 준 대견한 후배들이 있어 이 자리에 당당한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추교영 교장은 ‘단원고 제 8회 졸업 회고사’를 통해 “4.16 참사로 희생된 2학년 250명 학생들의 넋을 영원히 기리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단원고가 여러분의 모교인것처럼 유명을 달리한 2학년 학생들은 여러분의 동생이며 단원고의 아이들”이라며 “나와 선생님, 우리 어른들은 해마다 그날이 오면 추모와 참회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은 자신의 교실에서 부모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등 밝은 모습이었다. 또 일부 가족들은 2학년 교실을 찾아 책상위에 놓은 꽃과 과자, 사진 등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3학년 김주용군은 “힘든 일이 많은 한해였다. 이제는 슬픈 마음을 잊고 꿈을 위해 나아갈 시간, 좋은 마음으로 떠난다”며 “주변사람들이 힘들게 해도 자기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해마다 2월에 졸업식을 하던 단원고는 1ㆍ3학년 교실과 복도를 리모델링 하기 위해 올해 졸업식을 앞당겼다. 2학년 교실은 2학년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보존하기로 했다.

안산=임명수 기자 lms@joongang.co.kr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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