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화물차 물류대란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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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의 핵심인 지입차주 문제가 불거진 근본적인 원인은 최근 수년간 화물 물동량은 제자리 걸음인데 화물차는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화주로부터 물량을 받은 운수회사는 직영차량과 장기계약한 위수탁차에 우선 물량을 배정한 뒤 모자랄 경우에 주선사를 통해 지입차를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물량이 모자라게 되면 지입차는 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입차주는 물량을 얻기 위해 몇 단계의 알선업자를 거쳐 낮은 가격에 화물을 운반하는 구조가 된다.

운송업계에서는 시장기능을 통해 적정한 화물차 규모를 유지하는 한편 다단계 근절을 통해 중간단계에서 운임의 일부가 알선업자에게 흘러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급 넘치는 화물차량=건설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1997년 17만5천대이던 사업용 화물차는 2001년 27만1천대로 54%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의 육상운송 물량은 4억8천9백만t에서 5억3천5백만t으로 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지입차주로 운송업계에 뛰어든 반면 경기침체로 화물은 크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화물차 한대가 1년간 운반하는 물량이 4년새 2천7백90t에서 1천9백70t으로 3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화물차가 43% 늘어난 1992년에서 97년 사이 화물량이 60% 이상 증가해 차량당 운송량이 오히려 증가했던 것과는 반대다. 특히 97년 9만9천여대, 2000년 10만6천여대 수준이던 5t 이상 대형 화물차의 경우 2001년 14만1천여대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화물차 간에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특히 운수회사 직영차량이나 위수탁 차량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지입차주의 피해가 컸다.

시장원리로 풀어야=공급이 넘치면 가격은 떨어져야 정상이다. 이 과정에서 수지를 맞추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

부실기업 정리와 마찬가지다. 화물차가 넘치면 운임이 낮아지는 게 당연하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운송사업자인 지입차주는 이론적으로 따지면 적자가 누적될 경우 사업을 포기하면 된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단체행동을 통해 운임 인상을 얻어냈다. 또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노동자로 인정받아 사업주 신분을 벗어나 퇴출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고 있다.

화물업계에서는 이것이 지입차주에게는 당장 득이 될지 몰라도 효율적인 물류체계를 갖추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보고 있다. 전경련 등은 13일 "화물연대 운송거부는 우리 물류체계의 원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는 이를 개선하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차주가 운수회사 등에 차를 넘기고 운행을 중단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한편 ▶불법 다단계 알선을 금지해 화주가 지불한 운임이 엉뚱한 데로 새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이미 구축을 해놓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국가물류전산망을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에서 불법 행동 막아야=지입차주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운송거부에 나서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길을 막고 물류를 방해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화물연대 회원은 2만여명으로 14만대의 대형 화물차의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불법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물류가 상당 부분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남홍 부회장은 "이번 사태는 두산중공업과 철도사태 등에서 보여준 정부 대응의 연장선에 있다"며 "정부의 확고한 자세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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