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유출 재조사 불가피… DJ정부 도청 테이프 '후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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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대중(DJ) 정부 시절 불법 도청한 것으로 보이는 녹음테이프가 발견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 테이프는 옛 안기부 불법 도청 조직인 미림팀장 공운영(58.구속)씨가 도청 테이프 274개를 유출.보관한 것과 다른 것으로 도청 테이프가 추가로 유출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정원 실무자들도 검찰에서 "도.감청 자료가 정치권에 유출됐다"고 진술함에 따라 도청 규모, 대상자, 지휘 체계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 국정원의 불법 도청 증거=국정원은 지난달 조사 결과 발표와 이후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DJ정부 때 감청 장비를 이용한 불법 도청을 시인했으나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검찰 역시 그동안 수사에서 이동식 휴대전화감청장비(CAS)를 이용한 도청 대상 목록 등을 입수했지만 도청 내용이 담긴 자료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번에 압수된 도청 테이프는 국정원의 불법 도청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인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유선통신망 감청장비(R-2)를 이용한 불법 도청 증거가 없었는데 최근 관련자를 추궁할 단서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압수한 테이프가 DJ정부 시절 R-2를 이용한 도청의 부산물이란 뜻이다. 검찰이 최근 감청 업무와 관련한 전.현직 국정원 직원 20여 명을 줄소환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실무자급 직원에게서 "불법 도청을 해 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조만간 DJ정부 시절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과 원장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들이 2000년 9월 말 이후 불법 도청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사실이 밝혀지면 당시 공소시효 5년인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 정치권에 도청 자료 흘러가=국정원과 검찰에 따르면 몇몇 국정원 전.현직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등이 폭로한 국정원 문건의 내용 일부는 국정원에서 도청한 내용"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는 DJ정부의 대북 지원 관련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 이후 불법 도청 사실과 관련해 고소.고발이 이어졌고 검찰은 올 4월 "휴대전화 도청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등으로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추가로 불법 도청 테이프가 발견되고 정 의원의 자료가 도청 결과물이라는 진술이 나옴에 따라 당시 정치권에 도청 자료가 넘어간 경위에 대해 재조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검찰은 정 의원 등에게 도청 테이프 등 자료가 통째로 건네졌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누가, 누구에게, 누구를 대상으로 감청할 것을 지시하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2002년 3월 이전 R-2를 이용한 감청 내용이 정치권에 일부 흘러간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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