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림"-전시작품의 규모·작품수준 모두 뛰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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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72년8월10일부터 15일까지 신세계미술관에서 한국 최초의 민화전이 열린지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수많은 민화전이 있었으나 이번의 호암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민화걸작전(4월1일∼7월31일)처럼 그 규모, 작품수준, 예술사적 의미등 여러 면에서 중요한 전시회는 없었다.
민화는 한민족의 꿈, 소망, 사랑, 믿음을 솔직하고 담대하게 나타낸 생활습속에 얽힌 그림이다. 오랜 역사속에서 전통사회의 신복·군사에 대한 신앙과 주거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마음이 합쳐서 만들어낸 실용적·공예적이며 되풀이된 그림이다.
우리나라 회화사에 있어서도 신석기 시대의 암벽화, 고구려의 고분벽화, 삼국시대의 공예품, 고려청자의 자기그림판무늬, 조선시대의 거의 모든 공예품의 그림·무늬에 이러한 민화의 요소들이 담겨 있으며, 현존하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회화에도 창조성, 동양미학, 회화는, 전통미술사학적 관점의 차이는 있으나 민화와 같은 경향의 작품이 많다.
외국에서 민화는 순수한 대중을 위한 대중들, 즉 그림공부를 제대로 못한 비전문화가들에 의한, 일반대중의 그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특수사정 때문에 대중은 물론이려니와 왕실·사대부·사찰, 그리고 부유한 상인들을 의한 장식·기복의 작품들이 민화로 호칭되고 이번 전시로 그 많은 부분이 도화서화원, 그들의 제자 또는 그들에 버금가는 화공의 뛰어난 작품일뿐더러 창조물인 작품이 많다.
민화는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수복강령, 즉 오래오래 복 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이것을 방해하는 나쁜 귀신을 몰아내는 동시에 집 안팎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뜻이 담긴 그림이다.
이것은 한국의 무교와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방대한 체계를 갖춘 도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그림으로 고구려 벽화의 신선도, 용, 호랑이, 주작, 현무의 사신도로부터 음양오행의 이치가 담긴 오봉산일월도, 불교가 한국민족 종교를 받아들여 세운 산비각의 산신도, 그리고 각종 연례행사에 사용하던 군사를 위한 종교적 그림과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 목단도와 화조그림등 방안을 아름답게 꾸미고자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의 주류를 이루는 도화서풍 회화의 특징은 반복된 주제와 제약된 색조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작가의 창조정신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강렬색채의 대비와 비협화적인 협화, 밝고 선명한 색깔, 장엄한 고도와 어둡고 슬픈 구석이 없는 환한 아름다움, 거칠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간드러진 선, 사물과 물체간의 대위등 관계를 삼차원, 사차원으로 풀이한 서양의 현대화 같은 책거리…한국예인들의 멋과 흥, 익살과 애정이 정말 신들려서 예술한 흔적이 뚜렷한 작품이 많다.
민화는 쉽고 재미있고 사랑스런 그림이다. 어린이, 할머니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배우고 못배우고, 그림을 알고 모르고, 예술의식을 따질 필요 없이 모구가 다 함께 보면서 오래 살고 축복 받으며 그 꽃속에서 정답게 노니는 새둥지처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우며 지각보다는 몸으로 그 기쁨을 체험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호암전시는 한국의 화가, 공예인, 예술가들에게 오늘과 내일에 살려 나갈 세계속의 한국예술의 진로를 제시할 수 있으며, 문회사학도들에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어떻게 공존하며 또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의 문제점을, 그리고 미술사학도들에게는 왜 「리·슈나이더」의 1984년 미국순회민화전이 이런 그림들을 중심으로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새 시대의 국제사회에서 세계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한국회화의 미와 창조의 지, 회화사의 방향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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