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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요직 새 얼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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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0년 2대 민의원(원주·무소속)으로 정계에 투신한 이래 세 번의 옥고를 치른 4선의원(2, 5, 8, 11대).
일찌기 죽산 조봉암과 함께 민주사회주의운동을 벌여 40대 말과 50대의 10여 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75년 변호사를 개업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필묵에만 정진해 오다가 개혁주도세력의 권유를 받아 민정당 창당발기인이 되었다. 조국의 평화통일 및 복지사회건설이라는 자신의 오랜 정치이념과 민정당의 이념이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본인의 삼여변.
복역중 익힌 단전호흡술과 검도법으로 탁월한 건강을 자랑하고 있으며 서예는 두 번이나 개인전을 열 정도로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다섯 손가락 모두로 붓을 잡는 오지제력법을 쓴다.
바둑(1급)을 둘 때는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모를 정도로 집중한다.
입법의원으로 발탁될 때부터 중용의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래 함경도태생이나 유년시절부터 원주에서 자랐고 일본고문에 합격, 25세에 강진군수를 지냈다. 아호는 청곡.
78년에 상배 후 81년 김영애여사(62)와 재혼, 슬하에 3남2녀.

<한병송 법사위원장|육사출신 4선 관록>
판사·변호사 출신이며 8대국회때 신민당으로 처음 당선한 4선의원. 9대때엔 신민당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해 다시 신민당에 들어갔고, 10대매 역시 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또 신민당에 들어간 불운한 야당경력을 가졌다.
김영삼총재시절 대변인을 지냈다.
국회에서 논리 정연하고 날카로운 대정부비판발언을 자주 했다. 돗자리사건이 터지자 문공위원장이 됐다.
냉철한 성격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사교성이 적은 편이다.
술을 못하고 취미는 바둑. 부인 박인숙 여사와의 사이에 3남1여.

<봉두완 외무위원장|달변구사 사교일품>
TBC시절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로 유명했던 앵커맨.
신문기자로 출발, 워싱턴특파원을 거쳐 동양방송에 10년간 몸담으면서 서민과 호흡을 같이하는 독특한 방송영역을 개척해 11대 총선거에서는 전국 최다득표의 영광을 누렸다. 언론계에 있을 때 유엔대표를 하기도 했다. 능란한 구변과 영어로 국제무대에서의 매너도 1급이라는 평이며 현재 한가의원협회회장.
주위의 어색한 분위기도 곧잘 누그러뜨리는 친화력을 지녔고 딱딱한 분위기를 재치있는 위트로 푸는 사교솜씨도 일품.
부인 김선옥여사(43)와 2남1여. 취미는 가족이 함께 즐기는 테니스.

<권정달 내무위원장|개혁핵심 창당산파>
제5공화국 출범과정에서 이른바 개혁주도세력의 핵심멤버이며 민정당 창당의 산파역을 담당했다.
당사무총장으로 12대 대통령선거와 11대 국회의원선거를 승리로 이끄는데 일익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은 전국 최고득표율을 기록했다.
육군중위시절부터 21년간의 군생활 대부분을 정보장교로 근무했다. 전두환대통령이 보안사령관당시 정보참모.
별을 단지 불과 열흘 만에 군복을 벗고 정치신인으로 제5공화국출범에 참여했지만 정치 프로들을 능가하는 노련미를 발휘했다.
82년9월 로마에서 열린 IPU총회의에 한국대표단단장으로 참석해 7O차 총회를 서울로 유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취미는 골프(핸디20)와 테니스. 부인 용인순여사(방)와 딸만 셋.

<정재철 재무위원장|은행장 거친 재정통>
2년연속 국회예결위원장을 맡아 지난 정기 국회에서는 여야만장일치로 예산안을 통과 시켰다.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전매청차장ㆍ재무부기획관리실장ㆍ산은부총재ㆍ한일은행장 등 관ㆍ금융계에서 뼈가 굵은 민정당 재정통.
사람사귀기가 취미라고 할 정도로 사교가 뛰어나 강원도민회장ㆍ동국대동창회장 등 친목단체장도 맡고 있다.
지역구에서는 아이들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있다.
부인 김금주여사(53)는 고전진한씨 딸로 현재 숙명여대동창회장을 맡는 등 내조가 크다.
취미는 골프. 슬하에 1남2녀.

<유경현 경과위원장|언변 좋은 기자경력>
글 잘 쓴다는 정평을 얻은 정치부기자출신. 공화당 공천을 받아 10대지역구의원으로 정계에 깃발을 디뎠다. 공화당부대변인을 맡았다가 제5공화국들어 민정당에 참여, 재선의원이 된 후 수석부총무로 활약해왔다.
온건한 성격에 과묵한 편이나 일만 결심이 서면 날카로운 언변으로 소신을 밀고 나간다.
경우 바르고 눈치가 빨라 윗사람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지역구관리에 매우 열심이다.
황선심 청와대대변인·이종율 민정당부대변인 등과는 기자동기인 관계. 술·담배를 전혀 않는다.
부인 송지현 여사(36)와 2남.

<이해원 문공위원장|한때 성명전의 명수>
성대교수로 있다가 3, 4, 5대의원을 지낸 선친 이태용씨의 뒤를 이어 고향에서 8대 때 공화당공천으로 당선됐다.
4선의원으로 유일하게 지난 2년간 백의종군했으나 불평이 없었다.
인사동 골동품가게를 취미로 다니기 시작해 50여 개의 회귀한 벼루를 소강하고 있고 특히 엄지손가락만한 옛선비들의 항연을 마스코트삼아 주머니에 늘 지니고 다닌다.
9대 국회 초 공화당 대변인시절에는 야당과의 치열한 성명전을 매일 벌이는 고역을 치렀고 10·26직후엔 유정회총무로 잠시 원내사령탑을 맡기도 했다.
골동품 수집과 난초재배가 취미. 서울대법대 후배인 부인 홍영희여사와 2남.

<김식 농수산위원장|무골인상 계수밝아>
제5공화국출범과 때맞춰 군복을 벗고 나온 육사11기 출신의 예비역 육군소장.
권익현 사무총장과 더불어 민정당 창당 때부터 주목을 받아 언젠가는 한 자리할 사람으로 통해왔고, 지난 2년간 전남도지부위원장을 모범적으로 수행해 신임을 받아왔다.
광주사태이후 뒤숭숭한 지역분위기를 방관하지 않고 정면설득한 공로는 당고위층이 인정하고 있을 정도. 검게 탄 무골다운 인상과는 달리 계수에 밝고 경제이론의 구사에도 능한편. 지난 2년간 농수산위소속으로 있으면서 추곡수매가 결정 때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부인 정영자여사(46)와 2남l녀.

<배명국 상공위원장|법안처리에 박력>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해 무공을 세웠으나 윤필용사건에 연루돼 군복을 벗었다.
육사재학 시에는 럭비팀의 주장과 연대장생도를 지내 선후배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70년대초반 현역으로 청와대민정비서실에 잠시 근무한 일이 있고 전역 후에는 장면건설을 창설해 정계투신 전까지 경영을 맡아왔다.
비교적 터가 센 건설위롤 2년간 별다른 잡음 없이 잘 운영해 이번에 자리만 바꿔 유임.
테니스·골프등 운동엔 만능선수.
배명인 법무장관이 장형. 부인 장순묘여사(44)와 1남1녀.

<정동성 교체위원장|4·19세대의 직언형>
대학시절부터 학생운동에 깊이 간여해 4·19 당시에는 전국 대학생총연합회의장으로 학생의거에 참여한 4·19세대.
공화당 청년분과위원장으로 외곽청년조직을 관장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신부의 유적지인 미리내를 성지로 개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공화당의 정풍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10·26사태 때는 차지철 전경호실장의 빈소를 끝까지 혼자 지켜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다.
중앙집행위원으로 중집위회의 때마다「직언」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고 『한글세대』란 저서가 있다. 부인 전신순여사(44)와 2남1여. 취미는 골프·등산·낚시.

<이창혁 보사위원장|노조서 잔뼈…초선>
해방 후 월남해 고학을 하면서 국학대학을 졸업하고 철도청에 들어가 48년부터 철도노조운동에 앞장서 철도노조위원장에 올랐다. 60년 판도파업을 지휘, 성공시킨 것을 보람으로 꼽는다.
67년 한국노총3대위원장선거 때 56대55라는 간발의 차로 최용수 한전노조위원장을 물리쳤으나 4대 선거 때는 최씨에게 고배를 마셨다.
8대 총선 때 공화당 공천을 받고 영등포을구에 출마했으나 김수영씨에게 패배하고 8년간 어려운 생활을 했다.
전형적 외유내강형으로 11대의원 전반기에는 노인고찰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바둑과 술이 취미. 영동국교의 주임교사인 전옥성여사(55)와 3남.

<박권흠 건설위원장|구 신민 대변인 출신>
지방지와 중앙지의 오랜 정치부기자생활을 하다가 야당에 참여해 김영삼 전신민당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유신말기의 YH사건 등이 터질 무렵엔 신민당대변인으로 활약했고, 그 사건 때엔 안면에 큰 부상을 하기도 했다.
야당사절엔 김씨계의 일원으로 주로 강경 노선을 걸었으나 성격은 비교적 둥글둥글한 편.
입법의원을 거쳐 창당선인 15인중의 한사람으로 민정당에 들어갔으며 예결위분과위원장·정책위부위원장 등으로 역할을 발휘했다. 정규교육과정을 별로 거치지 않고 독학을 많이 한 특이한 케이스.
부인 김난옥여사와 1남4여를 두고있다.

<김종호 예결위원장|지사 때 발탁…내무통>
내무부주사로 출발해 과장·국장·차관보·차관까지 올라간 경력이 말해주듯 전형적인 내무행정통.
고향인 충북에서 지사로 있을 때 보은 홍수피해를 수습하는데 능력을 보여 첫 지방시찰로 보은에 내려왔던 당시 국보위상임위원장이었던 전두환대통령의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자그마한 체구로 온화한 인장과 조용조용한 말씨지만 내무위에서는 야당 측을 잘 구슬린다는 평을 들었다.
때문에 개각설이 있을 때마다 정무장관 등의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고교시절도 탁구선수도 지내는 등 스포츠에도 만능. 부인 한혜원여사(49)와 사이에3남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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