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사람을 우선한 진보주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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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의 강의는 항상 "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마무리됐다. 경제학자로서나 언론인으로서 이론 보다는 사람을 우선한 진보주의자였다. 일부에서는 그를 '이 시대의 이성'이라 불렀다. 선굵은 언론인이자 한국 진보 경제학계의 '큰 별'인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24일 오전 신부전증으로 타계했다. 61세.

해방 이후 최초로 정통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근대 경제학까지 두루 섭렵한 고인은 이땅의 진보 담론에 초석을 놓았다. 가치론을 전공하면서도 그 바탕에 깔린 휴머니즘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념과 이론 구조에 매몰되지 말고 그 출발점인 인간에 대한 생각부터 살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언제나 비주류에 속했지만 양분된 진보진영을 모두 아우르는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자신에겐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며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단 2명의 도반(道伴.함께 학문에 정진하는 이)에게만 문병을 허락했다.

굵고 뚜렷한 선을 유지하면서도 날카로움이 곳곳에 번득이는 논설과 칼럼은 후배 기자들의 전범(典範)이었다. 고인은 6년간 중앙일보 지면에 진보적 칼럼을 연재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부인에게 한 문장 한 문장씩 구술해 집필한 중앙일보 7일자 '정운영 칼럼'이 그의 마지막 글이었다.

그는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1981년 벨기에 루뱅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고려대 강사를 거쳐 한신대.경기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한겨레신문(88~99년).중앙일보(2000~현재)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MBC '정운영의 100분 토론', EBS '정운영의 책으로 읽는 세상'의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편저인 '세계 자본주의론' '한국 자본주의론'과 저서인 '광대의 경제학'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경제학을 위한 변명' '시지프스의 언어' '피사의 전망대' 등을 남겼다. 유족은 부인 박양선(55)씨와 유경(34).유신(33) 등 2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11시. 02-3410-6922.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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