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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딱딱한 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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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부가 시댁으로 향하는 마차에 오르며 마부에게 말했다. "빌린 말을 살살 다뤄라. 행여 다칠라."

마차에서 내리며 하녀에게 일렀다. "아궁이 불을 얼른 꺼라. 화재가 날까 두렵다."

집안에 들어서며 하인에게 분부했다. "절구통을 치워라. 다니기 불편하겠구나."

신부의 말은 어느 하나 이치에 어긋나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눈총을 샀다. 시댁 문턱을 막 넘은 새댁이 할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 위나라 때의 고사다. 좋은 말이라도 신분과 역할에 맞지 않으면 조롱거리가 된다는 얘기다. 범부(凡婦)가 그럴진대 공인에게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퇴계 이황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행여 허물이 잡힐까 언행을 살폈다.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손자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누가 나(퇴계)를 욕하거나 헐뜯더라도 변명하거나 다투지 말라. 혀를 깨물고 입을 봉해라. 응수하거나 타협하지도 말라. 삼가고 몸을 조심하는 데 노력하라."

말로 화를 부를 수 있음에 대한 경계다. 탈무드에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한 랍비가 제자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다. 소와 양의 혀로 만든 고급 요리가 나왔다. 그중에는 딱딱한 혀와 부드러운 혀 요리가 있었다. 제자들은 앞다퉈 부드러운 것만 골라 먹었다. 랍비가 말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네. 딱딱한 혀를 가진 사람은 남을 화나게 하거나 싸움을 일으키게 되지. 언제나 혀를 부드럽게 하도록 노력하게나."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최근 딱딱한 혀로 곤욕을 치렀다. "파키스탄에서 여성이 돈 버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강간을 당하는 거라서 강간을 당하려는 여자들이 줄 서 있다"는 그의 말은 시정잡배도 한 줌 생각만 있으면 못할 말이다.

국내에도 이걸 보며 뜨끔할 인물이 많을 터다. 총리건 장관이건 국회의원이건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저 험담이요, 변명이며, 욕설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배워보는 오늘의 영어 한마디. "Mind your p's and q's(말 조심)." 돌아섰다고 p와 q를 구분 못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래도 못한다면 '정유위 조무위(靜有威 躁無威)'다. 조용한 가운데 위신이 서고 나대면 조금 남은 것마저 날아간다는 말이다.

이훈범 주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