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48>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자아, 가세. 우리 같이 가서 저노무 신문사 윤전기를 부셔버려야 해.

하던 박봉우가 우리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우리는 거리로 나가자마자 간신히 그를 뿌리치고 슬슬 피해서 청진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박봉우는 우리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성부가 중얼거렸다.

- 어쩐지 이상한데… 요즈음 정상이 아니라구 들은 것 같아.

- 글쎄 그렇지? 하긴 말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우물쭈물 하다가 그냥 지척에 있는 이문구 사무실로 들어갔다. 역시 문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성부가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아마 소설가 남정현이던가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 아이구, 박봉우 그이 청량리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었어. 병원에서 도망갔다고 지금 가족들이 사방으로 찾구 있다구. 나두 연락을 받았거든.

우리는 그제서야 사태를 알아채고 바로 길 건너 신문사 앞으로 그를 찾아 나섰다. 당시는 이미 자유언론 사태가 난 뒤의 일이다. 몰려가서 두리번거리다가 누군가가 수위 아저씨와 수군거리고 나서 말했다.

- 일 저지르고 벌써 종로 경찰서루 끌려 갔다는데?

우리는 다시 우우 안국동 쪽으로 몰려갔다. 역시 박 시인은 거기 연행되어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시인 양성우와 함께였다. 양성우는 그 무렵에 광주에서 교직에 있다가 민주교사로 찍혀서 쫒겨났는데 흑석동에서 하숙하던 송기원이와 이시영에게 얹혀서 동가식서가숙 하던 처지였다. 그런 꼴을 딱하게 보고 문익환 목사가 그를 성서공회에 새로운 성경 편집자로 임시 취직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양성우는 우리가 박봉우에게서 간신히 도망친 뒤에 역시 청진동 이문구네 사무실로 오느라고 광화문 지하도를 건너던 길이었다. 그도 우리처럼 이상한 행색의 박봉우와 마주쳐 무조건 신문사에 갈 일이 있다는 그의 말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섰던 터였다. 박봉우가 일제 때부터의 낡은 신문사 건물 유리문 앞에 언제나 괴어놓던 벽돌을 그전부터 알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얼마나 잽싸게 그 벽돌을 집어들었는지 양성우가 말릴 틈도 없었다. 와장창 유리문이 부서지고 금테 두른 모자를 쓴 수위 두 사람이 달려들어 박봉우와 양성우 두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뒤이어 사람들이 몰려나와 그들은 꼼짝없이 붙들렸던 것이다. 우리 중에 누가 그랬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튼 선배들 중의 몇몇이 보안과장인가 하는 사람에게 신분을 밝히고 박봉우가 시인이라는 것, 지금 정신병원에 있다가 무단으로 외출했다는 것, 그러니까 병원 당국에 알려서 입원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래서 경찰서를 방문했던 전원이 선배의 신병인수서 아래 연명으로 서명하고 병원에서 앰뷸런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차가 도착했고 유치장에서 끌려나온 박 시인은 아직도 연설 중이었다. 우리는 침묵한 채 경찰서 앞에서 떠나는 앰뷸런스의 창 너머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계속 뭔가 입을 벌려 외치고 있는 박봉우를 바라보았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