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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별곡』 고전의식 현대화, 시적전개 빼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리는 방종이 자유가 아니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질서의 참다운 의의는 자유를 자유답게 누리고자 하는 공변됨에 있다.
시조는 그만한 질서 의미의 틀이다.
도처에 산재한 우리들의 어휘, 그것들은 모두 질서화되어야할 자유의 알갱이들이다.
그러한 알갱이들이 모이고 어울려서 타락하는 마음을 씻어주고 건져주는 정서가 되고 사상이 된다.
그같은 시의 의미와 율동감은 말할수 없는 즐거움을 갖도록한다.
오늘의 시조작가들은 그의미와 율동미를 찾으면서 보다 선택하고 달리 구성한다.
「산중별곡」-이 연작 4수는 우리의 고전의식을 한줄기 끌어다가 현대화한 시도물이라할수 있다.
그리고 희곡적 구성방법을 취하여 풍부한 내용이 돼 장면(주제)을 극적으로 전환시켜 상상력을 묘출해 내고 있다.
제4수에 이르러 이시조의 작중화자는 하산을 서두른다.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할 큰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신선 사상이라할까, 아뭏든 현실을 도피해간 작중의 화자가 산중을 마음껏 소요하고 상상력의 나래를 이리저리 펼쳤으나 그에게는 이미 지고 온 세속의 문명이 있었으며, 그것을 부려놓을 데가 없음을 자각한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매우 수준 높은 시적 전개이며 훌륭한 시조처리다.
「국제 전화」-현대문명속에서 뽑은 오늘의 정서감이자 그 이미지의 연결이다.
단지<시 한편>혹은<원고지>와 같은 어휘가 끼어들어 단조한 느낌임을 지적하고 싶다.
「공중전화」-역시 현대사회의 한단면이 재미있게 비유되어있다.
마지막 한수를 덜어냈는데, 제1수와 제2수의 설명부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수 한때」-주부와 수도물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겠고, 그때문에 단수가 시를 일으켰을 일.
끊어진 물줄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처음에는 유머러스하게 비유되고, 그만큼 여유를 보이다가 끝내 절실한 감정상태가 되면서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매우 효과적인 전개라 할수 있다.
「어떤 흐린 날」-이 시조는 뚜렷한 주제를 설명하는 일로 일관되어 있다.
대체로 초보자일수록 이런 주제를 붙들면 설명하는 일이 되기 십상이지만 상황 설명이라는 점에서 수필과 시의 중간지점에 놓인 것으로 볼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차원 더 끌어올려시의 일이 되어야한다.
상황 하나 하나를 전부 건드리고 노출시키는 일은 산문이 할 일이다.
시의 일은 될수있는데까지 간추리고 비약시켜야 하며, 바꿀수 있는데까지는 비유의 수법으로 흘러야한다.
「봄날」-그런대로 비유를 써서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있으나, 시조의 세계가 가장 중요시하는 리듬감각이 부족한편이다.
처음 단계가 풀렸으면 죄고 처음단계가 길어졌으면 풀어야한다는 삼장리듬을 잘 생각하기 바란다.

<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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