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감사원 정권바라기에 국가 골병 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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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감사원은 공직사회의 원칙과 기강을 바로잡고 나라 곳간의 출납을 감시해 건전재정을 이끄는 국가 최고의 감사기관이다. 임무가 막중하고 추상같은 기풍이 요구되는 만큼 대통령 소속 기구임에도 직무와 관련해서는 헌법에 의해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감사원의 행태를 보자면 실망스럽다 못해 분노까지 치민다. 흔들림 없는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이른바 코드 감사라 일컬어지는 ‘정권바라기’ 속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적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나아지는 게 없다. 국가 살림보다는 수장의 영달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감사원은 2일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2009년 캐나다 에너지 기업 하베스트의 계열사(NARL)를 인수하면서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사 1조3371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국회 국정조사가 예정돼 있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사업 중에서도 가장 큰 실패 사례로 꼽힌다. 그만큼 감사원의 고발은 정당한 직무 수행이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전 정권 때인 2012년 4월에는 감사원이 하베스트 인수와 관련해 “해외자원 개발시장에서 국내 공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시켜 향후 기술력과 시장경쟁력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칭찬하는 감사결과 보고서를 내놨었기 때문이다.

 당시 감사원 보고서는 “석유공사가 하베스트 지분을 인수하면서 자산가치를 실제보다 과다 평가”한 자의적 경제성 평가와 “대형 프로젝트를 이사회에서 사후 승인을 하는 식으로 추진”된 절차상 문제점 등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담당 팀장에 대한 ‘정직’을 요구하는 선에서 그쳐 사실상의 면죄부를 줬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자원외교의 의문스러운 성과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감사원이 태도를 180도 바꿔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에 대비한 책임회피성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지적했듯 감사원의 이 같은 코드 감사는 익히 보아온 데자뷰다. 감사원은 2011년 1월 4대강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과거보다 홍수에 더 안전하도록 관리되고 있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이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2013년 1월 2차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4대강 사업을 “총체적으로 부실한 사업”으로 규정했다. 그해 7월 3차 감사결과 발표 때는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고까지 단정했다.

 감사원이 2013년 3월 산업은행 등 4개 금융공기업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산업은행의 히트상품 다이렉트뱅킹을 ‘역마진 상품’으로 문제 삼았지만 이때도 코드 감사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대통령의 공공기관장 물갈이 발언 직후에 나온 발표였으며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혔던 강만수 KDB금융그룹 회장은 얼마 후 사임했다.

 황찬현 감사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국민의 신뢰 없이는 감사원이 존립할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감사원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흔들리면 공직사회가 바로 서지 못하고, 나아가 국가가 똑바로 나아갈 수 없다. 감사원이 이쪽저쪽 눈치나 본다면 국가가 골병 들고, 오직 국민 한쪽만 부릅뜨고 바라볼 때 국민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