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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찌라시에 집착한 수사로 국민들 납득시킬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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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이 어제 발표한 ‘정윤회 동향 문건’의 중간수사 결과는 5주에 걸친 성과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2월 초 특수2부와 형사1부 소속의 모든 수사 요원을 투입해 문건 유출 경위와, 정윤회씨와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 등이 세계일보를 상대로 고소한 명예훼손 사건을 조사했다. 검찰은 발표문에서 ‘정윤회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사실 확인 없이 짜집기를 했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로 박 경정이 관련 문건을 박지만 EG 회장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청와대 파견이 해제된 박 경정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보관했던 문건 중 일부를 한모 경위 등이 빼내 언론사와 기업체에 전달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박 경정을 구속 기소하고, 조 전 비서관 등 두 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오랫동안 청와대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 검찰 등을 요동치게 했던 사건치고는 허무한 결과다. 조 전 비서관이 17건의 청와대 문건을 박 회장에게 전달한 이유와 정윤회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인사개입 의혹 부분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 측은 “조 전 비서관이 정치적 야망 때문에 박지만 회장에게 문건 보고를 구실로 접근한 것 같다”고 밝히고 있다. 또 “박 경정이 작성한 보고서에 적시된 ‘십상시(十常侍) 모임’ 등이 실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국민이 궁금해한다는 이유로 이들의 이권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것은 사법절차에도 맞지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선 문건 유출 등 청와대 ‘보안 사고’에 못지않게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도 중요하다. 과거 모든 정권에서 측근 비리가 발생했던 점을 고려할 때 국민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건국 후 이명박 정부까지 아들과 형 등 친·인척은 물론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무리들의 허세를 국민들은 신물이 날 정도로 경험했다.

 법리적으로도 세계일보의 명예훼손 혐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정씨 등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취재 과정에서 입수된 문건이 진실하다고 믿은 상당성(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수준)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미적거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도 유감스럽다.

 우리 사회는 검찰이 이번 수사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는지에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찰로선 수사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으로 수사의 폭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관련자들의 소환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청와대 인사 중 이재만 비서관만 소환 조사를 받았을 뿐 홍경식 전 민정수석 등은 서면조사로 대체했다. 이러니 “대통령이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검찰이 법리를 바탕으로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아닌가.

 여기에다 수사 도중 자살한 최모 경위와 그 가족들의 ‘민정수석실 회유설’ 주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요소다. 검찰 출신인 김영한 민정수석과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통해 ‘수사지침’을 받는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을까.

 검찰의 ‘반쪽’ 수사가 국민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졸작(拙作)’으로 평가받으면서 야당에선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문건 유출에만 집착한 것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검찰은 권력과 맞섰을 때 존재 가치가 있었으며,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용기 있고 공평한 검사’를 내세웠던 검사 선서문을 되새기며 검찰은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국민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