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133>중앙당과 내각(2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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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대통령의 빈번한 내각개편은 사람을 몰랐던것과 기대에 미달하는 일처리에 연유했다. 이박사는 곧잘<내가 누구누구를 장관으로 임명하지만 일을 잘못하면 자꾸 갈아치울테야>라고 말하기도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물을 추천하라고 종종 얘기했고 그것이 자리를 둘러싼 심한경쟁, 때로는 모해풍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박사의 의도가 어떠했든 필요할 때 적절히쓰다가 버린다는 세평을 낳는든 부작용이 많았다.

<이박사 크게 실망>
이대통령의 개인고문이 던「올리버」의 회고는 초기의 각료 들에대한 대통령의 실망을 잘 나타내주고있다.
『<두통거리는 장관들이 아무도 자기부처를 꾸려나가는 방법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사람들은 돈을 너무 많이 쓰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는 방법을 이해못하고 있다. 예산은 점점 군형을 잃고 정부전체가 혼란에 빠져있다. 가장 고약한 것은 임병직도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게 없다는> 대통령은 그런 말을 내게 들려주고는 임장관을 불렀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자네를 친아들처럼 생각해왔네. 외무장관으로 데려 왔을 때 자네가「조지·워싱턴」내각의「해밀턴」이나「제퍼슨」같은 위대한 장관으로 역사에 전해지기를 바랐던 것일세.>
임장관이 감동되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약속하자 이대통령은 메모지 한가운데 줄을 죽 그으며<내가바라는건 자네가 소관부를 정말 능률이 오르도록 재편성하라는 것일세. 예산절감을 위해 직원의 반수를 해임시킬수 있을걸세. 절반정도의 인원을 가지고도 자네는 훨씬 일을 잘 할수있어. 그방법으로 여기 한쪽칸에 자네부의 중요 직무를 열거하고 그반대편에 신임하는 사람들의 이름을적게>라며 자세히 설명해 주자,임장관은<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읍니다>고 소리쳤으나 그해결책은 결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올리버」의회상대로 임장관은 대통령의 기대에 따르지 못했다 경무대비서였던 황규면 씨의 임장관에대한 회고가 이를 말해준다.
『임병직씨가 외무장관이되어 갓 귀국해서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수준의 차이등 때문에 거의 신경쇠약에걸린 사람같았다. 당시는 장관들이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라 자기부처 소관사항이란 것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이 일방적인 경향이기는 했지만 임장관은 사소한일에도 성미를 부렸다.
어느날은 장관승용차를 타고가다 길거리에서 침을 뱉는 사람을 보고 뺨을 올려 붙인적도있다. 「덜레스」미국무장관이 서울을 방문해 창덕궁인정전에서 파티를 열었을때다. 이때도 차려내놓은 전등 음식이 차다고 숙수를 불러<이게음식이냐>면서 주먹질을 하기도했다. 황성수씨등 당시의 외무부국장들은 임장관밑에서 모두들 한번씩은 얻어 맞은 것으로 기억돤다』
이박사의독특한 인재찾기는 매로 대립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함태영부통령비서실장이던함동욱씨의 회고가 그 하나다.

<적응못한 임병직>
『함태영씨가 심계원장이던 때의 일이다. 대통령은 옛날 얘기 끝에 그래도 우리때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얘기가 거듭되자 함원장은 내게<함비서 젊은사람들중에서 추천할만한사람이없겠느냐>고물었다.

<백재무가 귀띔>
나는 장기영씨등 두사람을 추천했다. 내가 추전한 한사람은 월남 이상재선생의 손자다. 함원장은<이군이야 월남선생 손자면 대통령도 잘 알텐데 뭘…>그러면서 장기영을 만나 보자고했다. 그래서 당시 명소의 하나였던 모윤숙씨가 경영하던 낙랑구락부에서 점심을 함께 하도록 주선했다. 장씨를 만나본후 만족해했다. 그며칠 뒤 함원장은 장기영을 추천했다. 이대통령은 장기영(전체신장관)이는 나도 안다고해서 그장기영이 아니고 한은부총재를 하는 장기영이라고 소개하면서 금융인 이지만 박력도있고 무엇이든 맡길만한 큰 인물이라고했다.
그런 얼마뒤인데 경무대에서 나를 불렀다. 갔더니 고재봉, 황규면비서, 김장흥총경등이 함께있었다. 거기서 함원장이 장기영을 대통령께 추천한 모양인데 그배경을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경무대비서실이란 이런것 문초하는데냐고 정색을 하고 나도 장기영이 누군지 모르는데 함원장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시치미를 뗐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무렵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을 아무리 세밀히 분석해도 장을 추천할만한 사람은 함원장 말고는 달리 지피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며칠 뒤 김장흥총경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이문제에 대해 피차 숨김없이 터놓기로해 내가 추천경위를 얘기했다. 김장흥씨말로는 대통령은 백두진재무장관이 들어오자 장기영에대해 물었다는 것. 백장관은 그앞에선 어물어물 대답을 하고 나와서 그 배후를 내사했던 모양이다. 그럴때 대통령은 김총경에게도 장기영에 관해 알아봐 보고 하라고 지시를했다.
그런데 백재무는 장이 한은총재자리를 노린다고 보고 최순주한은총재에게 넌지시 귀띔해 장을 제거하는 공동전선을 폈던 모양이다.
어느날 최총재가 나를 부르더니 왜 함원장이 나를 장기영으로 갈아치우려 하느냐고했다.
그때 최총재는 총재직을 맡은지 반년쯤밖에 안됐을 때 였다.
그 무슨 그런 오해를합니까. 한은총재 자리가 비었을때 대통령은 임철호를 앉히려 했는데 함원장이 은행책임자는 금융을 아는 사람이라야지 법를가로는 곤란하고 또 내부승진이 되어야 사기도 오른다면서 당신을 추천했는데 그릴리가 있느냐고 했다. 또 사실이 그랬고…. 그러나 나로서는 함원장이 장을 재무나 한은총재가 아니라 그밖의 다른자리도 맡아서해 나갈 인재라는 뜻으로 추천했다는 말까지는 해줄 수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장기영이 자기네 자리를 노린다해서 경계했다. 그때 금융계는 최순주라인과 백두진라인이 있었는데 장기영은 최와 가까웠다. 이두그룹간의 불화가 심해 초대 재무장관을 맡았다가 금융통화위원으로 있던 김도연씨가 타협을 주선한 일도있다. 아무튼 두그룹의 협공에 배겨나지 못했던지 장기영은 그 얼마 뒤 금융가를 떠나 신문가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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