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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소방서 김홍종과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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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매일매일 조금씩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그러나 결코 삶의 길을 단념할 수는 없습니다』-.
간암으로 3개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도 밤낮없이 화재현장을 뛰며 화염과 싸우는 서울 영등포소방서 소방과장 김홍종씨(42·소방령).
김씨는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과 초인적인 의지로 죽음의 공포를 딛고 의사가 예상한 생명의 마감일을 9개월째 넘기며「덤의 삶」을 누리고 있다.
김씨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공무원 정기건강진단에서 담낭과 장의 기능이 악화되고있다는 최초의 불길한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하루 2∼3차례씩 화재현장에 출동, 진압지휘를 해야하는 그는 불길과의 싸움에서 진단결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몸무게가 64kg에서 56kg으로 줄어들어다. 뱃속에 가스가 가득찬 느낌이 심해졌고 통증이 왔다. 먹은 음식은 여전히 소화가 안되었다.
7월초 한밤중, 통증을 더이상 참지 못해 대림동 성모병원으로 달려갔다. 내시경 초음파검사·X레이 특수촬영을 한뒤 병원측은『담낭과 간이 나쁘다』며 당황한 표정이었다.
7월중순, 명동성모병원으로 옮겨 동위원소촬영을 했다. 역시 병원측은 병세설명은 없이 수술을 권유했다.
입원 사흘째 되던 날 이른 아침, 김씨는 당직간호원 몰래 간호원실에 비치해둔 동위원소필름을 꺼내 친분있는 개인병원을 찾아가 친척의 증세라며 자세한 설명을 구했다.
『간암일세, 이 상태론 3개월을 넘기기 어렵겠군. 신변정리를 시키게.』필름을 검토한 의사의 침통한 선고였다.
『구름속에서 검은 비늘같은게 쏟아져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하고 싶었습니다. 환자가 아니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었읍니다.』그 길로 그는 퇴원을 했다. 그리고 3개월이 되는 날짜 주변에 동그라미를 표시해놓고 조용히 주변정리에 들어갔다.
7월말, 부인 전명식씨(39)는 한번더 서울대병원을 찾아보자고 했다. 이 병원에서도 이미 때가 늦어 수술이나 방사능치료·약물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간에 암세포가 상당히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는 동안 김씨는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옆자리의 어린 생명을 보았다. 그순간『나는 40년을 넘어 살아왔다. 행복에 겨운게 아니냐』는 생각이 자신을 질타했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 직면하고 보니 슬픔과 분노가 충돌하기도하고 체념과 마음의 평화가 사이좋게 악수하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피할 길 없는 운명이라면 꿋꿋하게 최후의 순간을 맞기로 하자 마음이 평화로와졌다.
김씨는 8월초 병원에서 퇴원, 집에서 통원하며 1개월에 10일씩 항암제주사를 맞았다. 또 무엇보다도 마음의 안정과 단백질 섭취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음식을 야채·생선·잡곡밥·율무등을 먹고 녹즙을 마시고 표고버섯·우엉·굼벵이등 고단백질을 섭취했다.『최고의 치료제는 삶에 대한 의지·욕심·희망입니다.』새벽5시30분에 일어나하는 줄넘기·맨손체조등 알맞은 운동과 꾸준한 섭생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초 의사가 예상한 생명의 마감일 3개월이 지났다. 김씨는 달력에 표시해놓았던 죽음의 예정일 동그라미를 지워버렸다.
올 l월초 김씨를 진찰한 서울대병원내과 김정룡박사는 9개월전 형태와 위치가 불확실했던 간이 정상적인 위치와 크기로 돌아가고 있다고 반가와했다. 2월 진찰 때는『죽지는 않겠구먼』, 3월은『많이 좋아졌다』로 증세의 호전을 말했다.
김씨가 병마와 싸우던 지난겨울동안 관내에서 발생한 화재는 2백여건이었다.
그는 한번도 거른 일없이 현장을 지휘했다.『꺼져가는 불꽃을 보고는 내생명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환상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그럴수록 다시 살아나는 불꽃이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15일로 소방관 투신 21년을 맞는다. 충남청주출신으로 경기대 2년을 중퇴후로 소방본부 기획분야에 근무하다 소방과장의 직책을 맡았다.
지금까지 받은 표창은 국무총리표창을 비롯, 20여차례.
중부소방서에 근무할 때 남대문시장·파레스호텔화재등 30여건의 대형화재를 겪었는데 그중에서 71년 대연각호텔화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것.
68년12월 부인전씨와 결혼, 경표군(13·영등포중l년) 동희양(10·중앙대부국3년)등 1남1녀와 노량진2동 302의153에서 살고있다.
김씨의 월급은 37만원. 현재 살고있는 노량동2동20평짜리집을 3천2백만원에 팔아 치료비에 충당하고 전셋집을 구하고 있다. 항암제 주사에 대한 의료보험혜택도 4월말로 끝나 5월부터는 전액 자신이 부담해야할 형편이다.
부인전씨는 남편이 간암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았으나 자신에게조차 내색을 않은 남편의 강인한 마을을 읽게되자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한편 영등포소방서 장비계장 구본관소방경감(39)은『김과장은 소방서에 나와 자신이 간암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에 충실했다』고 했다.
김씨는 장남 경표군이 이웃친구에게『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신문배달을 해서라도 공부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자포자기가 암환자에게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됩니다.』암환자는 맨처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과 부인, 그리고 고통과 불안, 우울과 슬픔, 타협, 마지막으로 믿음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 김씨는 이와 비슷한 단계를 넘어 다섯번째에 와있다.
『생명은 신이 주신것. 신이 부를 때까지 지금의「덤의 삶」을 열심히 살렵니다.』삐-삐- 출동버저가 울린다.
『영등포시장근처 세탁소에 상황 A조 출동!』지령실의 지시를 받으며 김과장은 날쌔게 방화복을 걸치며 지휘차에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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