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사인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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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홈런』
『호움런-.』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굿바이 홈런을 때린 H선수는 사방에서 사인공세를 받는다.
『H오빠.』『H형』『H선수』『H야.』를 외쳐대며 저마다 「사인」받을 흰 종이를 내민다.
가위 「사인」전쟁이다.
이런 모습들은 경기장뿐 아니라 유명세를 몰고있는 인기스타나 가수, 심지어는 꼬마탤런트들의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인기가수 J군(30)은 『많을 때는 하루 3백여명으로부터 사인공세를 받아 귀찮아서 나다니지를 못한다』며 엄살이다.
이런류의 사인은 일방통행적 의미의 사인이고 주요계약서류나 대금결제 등 생활적 의미의 사인이 도장대신에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다.
스타 아닌 「보통사람들」의 생활 속에 널리 파고든 「사인문화」.
크레디트카드나 가계수표사용, 물품을 사고 팔 때의 확인증, 세탁소에 옷가지를 맡기고 받는 영수증, 여성들의 핸드백·옷·구두를 살수 있는 물품인환증 등에도 곧잘 사인이 통용되고 있다.
가정주부 이영순씨(33·서울황학동1129)는 『종전에는 친구들간의 약속메모나 편지 등에 장난 삼아 비표로만 사용했던 사인이 이제는 물품구입 때나 연하장 등에도 수시로 써먹어 사인을 일찍 마련해두길 잘했다』고 말했다.

<인기인 유명세로도>
사인이 날로 성행하는 것은 편리성 때문. 우리 나라는 원래 중국·일본과 함께 「도장문화권」에 들어 한나라 지배권에 있던 낙랑이래 도장을 「자기신표」로 써왔다.
그러나 해방 후 미군이 상륙하면서 사인을 흔히 보게 됐고 60년대 외국과의 무역거래가 활발해지며 사인통용이 늘기 시작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사인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곳은 군부. 서명란의 직책에 있는 군인은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인을 등록케 하고 있다.
일반기업에서도 사인결재가 차츰 유행 중인데 특히 외국과의 문서거래가 빈번한 선박회사나 용역회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B선박회사 상무 김용태씨(47)는 『어차피 회사의 성격상 외국과의 계약서 등 문서의 90% 이상을 사인으로 처리하는데 구태여 도장결재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 2년 전부터 모든 내부결재는 사인으로 하고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의 시중은행과 백화점 등에서 1백10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크레디트카드는 「사인문화」의 대표적인 케이스.
혼수감 구입서부터 예식장비·신혼여행까지도 모두 한 장의 크레디트카드로 해결했다는 정두남씨(30·회사원·서울공덕동)는 『한푼의 현금도 만지지 않고 사인하나로 끝냈으니 우리부부는 「사인부부」인 셈』 이라고 했다. 도장을 신주 모시듯 하며 보수적이던 금융가도 최근에는 통장과 사인하나만으로 예금의 출납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사인카드예금」을 신설했다. 프로야구가 붐을 이루면서 코흘리개 꼬마들도 자신의 사인을 가져야 행세하게 됐다.
자칭 「동네 야구왕」이라는 홍순백군(12·서울망우국교5년)은 『이다음에 커서 스타투수가 되면 써먹으려고 아빠를 졸라 사인을 만들었다』며 『친구들간에 멋진 사인을 할 줄 알아야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사인부부" 유행어>
사인이 대중화 기미를 보이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 인장업체. 청량리로터리에서 13년째 도장포를 경영중인 방현수씨(37)는 『사인이 많이 쓰이기 시작한 6∼7년 전부터 도장이 필수품이라기보다 사치품화돼 고급품만 수요가 늘고 전체 수요는 크게 줄었다』며 걱정스런 표정. 이 때문에 목도장의 협정가격이 1천6백원이지만 실제로는 5백원에도 도장을 파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인의 형태는 가지각색.
자기이름의 영·국·한자표기 등에 개별 혹은 한 두 가지 복합한 형태가 있는가하면 「자신만이 아는 비표」나 부호형식의 사인도 있다.
또 둥근 원안에 시각을 점으로 표시하기도 하고 고종황제의 「수결」처럼 자신의 생년월일을 현상화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애완동물의 특징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이나 필기구의 종류를 형상화한 것도 있다.
도장이 글자의 모양이나 크기·형태에 따라 「길인」「흉인」의 미신적 믿음이 있듯 사인도 마찬가지. 『너무 복잡해도 안되고 적당한 획을 가지며 「좌하」로부터 「우상」으로 힘차게 뻗어 진취적 기상이 있어야 최고의 「격」을 갖춘 사인』이라는 것이 역술가들의 일반론.
기미년 3월l일에 태어나 『삼·일』을 옆으로 뉘어 자신의 사인으로 사용해 왔다는 김병숙씨(64·서울면목동)는 자신의 독특한 사인과 걸어온 인생을 묘하게 연결한다. 『해방 후 모무역회사에 과장으로 입사해 차장을 거쳐 부장까지 승진했다가 병고로 5년간 쉬다보니 살림이 어려워 다시 수위로 들어가 일하다 4년 전 그만두었다』는 김씨는 『어쩌면 내 인생의 기복과 사인이 신기할 정도로 맞아 떨어진다』고 했다.

<도장수요 크게 줄어>
사인의 현행법상 지위는 『문서상 요식행위로 「날인」을 명기한 때에는 반드시 도장을 찍도록 되어있고 단지 인증을 위한 경우에만 진위가 확인 가능한 사인에 한해 도장과 같은 효력을 부여한다』로 되어있어 도장보다 격이 떨어지는 셈.
더구나 △사인은 도장보다 역사가 짧고 문화적으로도 덜 수용돼 인식이 부족하고 △등록제가 아니어서 형태상 진위여부를 가리기 어렵고 △제3자의 신빙도가 낮아 도장의 보완수단정도 밖에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게 김태형변호사(64)의 설명이다.
현재 내무부에서도 민원서류간소화의 일환으로 도장대신 사인(서명)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1천여년동안 자신의 몸이나 혼처럼 여겨온 「도장문화」가 순순히 「사인문화」에 밀려날지는 두고보아야 할 것 같다. <이만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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