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0편 외우니 논술 실력 쑥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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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처음엔 시켜서 억지로 외우다 보니 효과가 있을까 의심했어요. 하지만 이젠 시인의 의도가 느껴지고 감상도 잘 돼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같은 시는 무척 긴 데도 쉽게 외워지더라고요."

서울 동도중 2년 손성호(14)군은 우리 명시 50여편을 술술 외운다. 손군은 1학년 때부터 매주 한 편꼴로 시를 외웠다. 3학년 때까지 모두 100편을 외울 예정이다. 거기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는 단 두 줄의 시(정현종의 '섬')부터 '긴' 시까지 있다. 시뿐만 아니다.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김동인의 '감자' 등 단편소설도 100여 편 독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시 외우기와 단편소설 읽기는 손군뿐 아니라 동도중 재학생이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동도중은 수행평가 차원에서 1999년부터 명시 외우기를, 지난해부터 명단편 읽기를 매주 한 편씩 하고 있다. 학년당 33~34편꼴이다.

이 학교 언어교육부장 박찬두 교사는 "프랑스에선 고교 졸업 때까지 자국의 명시 100여 편을 암송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예술교육의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데서 힌트를 얻었다"며 "주당 한 시간을 할애, 외우도록 하는데 학생들이 처음엔 힘들어 하지만 나중엔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 학교는 졸업식 때 100편을 모두 외운 학생에게 최우수상을 주는데 졸업생의 80% 정도가 받는다고 한다.

명단편 읽기는 교사들이 엄선한 단편 전문(全文)과 해설, 그와 관련된 10여 개의 문제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면 학생들이 이를 읽은 뒤 세 문제를 골라 '단편소설 읽기 공책'에 답한다. 예를 들어 오영수 작 '갯마을'을 읽고 '제목 갯마을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바다는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인가' '주인공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았을 것인지 상상하라'등의 문제에 답하는 식이다. 박 교사는 "베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박애란(2학년)양은 "시를 외우면서 감성과 상상력이 생겼고 소설을 읽으며 내용 파악 능력이 많이 는 것 같다"고 했다. 졸업생들도 "일상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시어를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즐겁다"(박영화), "100편을 다 외운 내가 자랑스럽다"(황종훈), "암기력이 향상되고 성격이 조금 차분해진다"(채명석)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 연세대 공대에 합격한 졸업생이 찾아와 "중학교 때 시 외우기 등을 한 덕분에 자연계인데도 언어영역을 상당히 쉽게 했다"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박 교사는 "우리 학교 출신이 논술과 언어영역에서 타교 출신보다 한 등급 이상 높다고들 얘기한다"고 전했다.

동도중은 지난해 마포문화원이 연 글짓기대회에서 3개 부문 상 18개 중 11개를 휩쓸기도 했다. 문화원 관계자는 "글짓기 대회에서 동도중은 유명한 학교"라고 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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