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 받는 '신기한 시장' 외국인 관광객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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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인천 신기시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신기통보를 사용해 만두를 구입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엽전 모양의 신기통보. [최모란 기자]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4시 인천시 남구 주안동의 전통시장인 신기시장. 막 도착한 관광버스에서 내린 20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인회 건물로 들어섰다. 체험관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이들은 곧이어 본격적인 시장 탐사에 나섰다.

 독일에서 온 마티아(45)는 시장 초입에 있는 만두가게 앞에 멈춰섰다. “만두는 생전 처음 보는데, 마침 한국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불고기 냄새가 나길래 먹어보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네요.” 신기한 표정으로 만두를 맛보던 마티아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인천 신기시장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시장 입구엔 외국인 관광객 전용버스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주말이면 2만 명이 넘는 내·외국인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다. 내국인만 오가는 다른 지역의 전통시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방앗간과 정육점, 야채·과일 가게 등 150여 개 점포가 빼곡히 들어선 이곳은 겉모습만 보면 여느 전통시장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사용하는 ‘돈’이 다르다.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저마다 ‘신기통보(新起通寶)’라고 적힌 구리빛 엽전을 들고 다닌다. 이 시장에서만 사용하는 화폐다. 시장에서는 한 개당 500원인 신기통보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6개씩 무료로 나눠준다. 가이드 김현수씨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옛날 돈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설명하면 다들 기념품으로 가져가겠다고 할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적대던 신기시장은 2000년대 초부터 주변에 대형마트와 백화점 8곳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위기가 닥쳤다. 2004년엔 아치형 지붕을 설치하는 등 환경 개선 공사도 하고 “대형마트보다 싸다”며 할인·경품 이벤트도 열었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긴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상인들은 머리를 맞댔고,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신기통보였다.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를 본뜬 일종의 전통시장 상품권이었다. 처음엔 인근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장 체험교육용으로 만들었는데 이내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시장 상인회는 내친 김에 열쇠고리와 휴대전화 고리 등 신기통보로 만든 기념품도 출시했다.

 효과는 예상 외로 컸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길거리 음식도 맛볼 수 있다는 소문에 인천공항 환승객들과 인천항 크루즈 승객들이 물어물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엔 인천공항의 환승투어 코스에 포함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단골 여행지가 됐다.

 시식용 먹거리와 이것저것 끼워주는 덤 문화도 외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상인들은 영어와 중국어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맞았다. 여러 음식을 골고루 맛보려는 외국인들의 취향을 고려해 만두 한 개, 종이컵 닭강정, 전 반접시 등 소형 먹거리 상품도 개발했다.

 시장이 활기를 되찾자 대를 잇는 점포도 늘어났다. 현재 전체 상가의 30%가 2대째 운영 중이다. 김종린(60) 상인회장은 “최근엔 다른 시·군의 시장에서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한다”며 “마일리지 적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내국인과 외국인이 모두 만족하는 시장으로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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