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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사설

분단 70주년은 남북관계 대변혁의 적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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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적극적인 남북대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어제 조선중앙TV를 통해 직접 발표한 신년사에서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우리는 대화와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2015년 새해 벽두부터 북한이 정상회담 카드까지 내보이며 대화분위기 조성에 나선 모양새다.

 대화 없이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표명한 것은 평가하고 환영할 일이다. 김 위원장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화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 첫 번째 행동은 남측이 이미 북측에 제안해 놓고 있는 2차 고위급 접촉과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수용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는 광복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의 강점과 외세의 개입으로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되도록 남북은 냉전적이고 소모적인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공산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대 세습체제를 유지하며 개방·개혁과는 담을 쌓고 있다. 집권 4년차를 맞은 김 위원장은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내세워 집권 기반을 다지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전 같지 않은 데다 경제난과 제재에 허덕이고 있는 러시아도 제 코가 석 자인 처지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대북압박 노선은 요지부동이다. 김 위원장이 난국을 타개할 활로는 남한밖에 없는 것이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도 다급하긴 마찬가지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 등 대북정책 구상은 많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올해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도모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통일준비위원회 정부 측 부위원장 자격으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서둘러 제안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느끼는 조바심의 반영일 것이다. 분단 70주년이 되는 올해는 서울과 평양 모두에 남북관계 대변혁의 적기(適期)이자 골든타임이다.

 이 기회를 살리려면 남북관계를 대국적 견지에서 바라보고, 사소한 문제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김 위원장 스스로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무의미한 언쟁과 별것 아닌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전단 살포에서 한·미 연합훈련, 북방한계선(NLL) 침범, 북한 인권 등의 문제로 남북이 서로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남과 북 모두 서로를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함으로써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끌어내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구체적인 구상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히는 방식으로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화답한다면 북한이 고위급 접촉과 당국 간 회담에 나올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회담이 성사된다면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조성 등 남북 간 현안과 어젠다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통 큰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북남 사이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 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이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상정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경계심의 표현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은 흡수통일론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 만큼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면 정상회담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고 본다. 남북이 상생과 호혜의 정신으로 화해와 협력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분단 70년사에 한 획을 긋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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