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구 '돈벼락' 에서 시민의식을 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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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내와 해외에서 벌어진 ‘돈벼락’ 사건이 새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대구 도심에서 정신장애인이 현금 800만원을 뿌렸는데 모든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신년맞이 행사장에서 미국 달러 모양의 상품권이 뿌려지는 현장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36명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횡재를 꿈꾸는 것이야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만 대구 돈벼락 사건을 보면서 공동체와 시민 의식을 한번쯤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돈을 뿌린 20대 정신장애인의 할아버지는 평생 고물을 수집해 모은 돈을 손자에게 물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아픈 손자에게 물려준 귀한 돈입니다. 사정을 모르고 돈을 습득한 분은 원주인에게 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는 호소문을 올렸다. 본인이 직접 돈을 뿌린 경우라서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처벌할 근거는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우리의 시민의식을 점검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 성격을 지닌다. 꼭 법적 의무가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고려하는 것이 시민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호소문과 언론보도가 나간 뒤 몇몇 분이 돈을 돌려주고 있다고 한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30대 남성이 경찰지구대에 찾아와 “주운 돈”이라며 100만원을 돌려주고 갔다. 40대 여성은 “70대 어머니가 도로에서 주웠는데 주인에게 돌아주는 게 옳은 것 같다”며 15만원을 놓고 갔다. 수표도 아닌 현금을 주웠는데 자발적으로 돌려준 몇몇 시민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뿌려진 돈의 상당 부분이 2일 오후 현재까지 회수되지 않고 있다. 아직은 희망을 품을 만한 시민의식이 발휘되고 있지는 않다. 횡재를 꿈꾸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주운 돈을 돌려주는 것 또한 뜻깊은 일이다. 더구나 할아버지가 날품팔이해서 아픈 손자에게 남겨준 소중한 돈 아닌가. 만약 800만원이 되돌아온다면 가뜩이나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 작지만 의미 있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대구 시민의 더 큰 시민의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