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129>중앙당과 내각(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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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나라 최초의 직접선거였던 52년의 정·부통령선거는 엄청난 이변을 기록했다.
막강한 자유당의 부통령후보-누가봐도 이승만의 러닝메이트였던 이범석이 낙선하고 국민에게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던 전심계원장 함태영이 당선된것이다.
함부통령의탄생-그것은 그 시기의 이나라 정치축도다.
정치집단의 능력의 한계, 국민의 정치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첫 직선서 이변>
후보등록을 이틀앞둔 24일하오 l시대통령임시 관저엔 1천 시민들이 몰려왔다.
이대통령의 재선출마를 촉구하는 데모였다.
그시간 대통령은 부산앞바다인 나무섬에 낚시질을 나가 있었다.
데모군중은 대통령 면담을 요구해 관저안으로 밀고들어 오려했으나 당황한 황규관비서가「프란세스카」여사에게 의논을 했더니 편지를 써주면서 대통령께 전하라고했다.
황비서는 나무섬으로 갔다.
대통령은 「밴-폴리트」장군과 함께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편지를 전하고 관저앞 데모사태도 보고했다.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고 두 번째 물었을 때야 『가봐…알아서해』라는 반응이었다.
돌아온 황비서는 준비해있던 등록서류를 접수시켰다.
이범석도 그날 러닝메이트로서 함께 등록을 했다.
그런데 이박사를 지지하는 부통령후보는 난립이었다.
그선거의 대통령후보는 자유당이승만, 민국당이시영, 무소속조봉암 신흥우였다.
부통령후보는 이범석 이갑성 이윤영 천진한 임영신 ,백성욱 함태영 정기원 그리고조병옥등 9명.
이중 조병옥만이 이시영의 러닝메이트인 야당후보였고 다른 8명은 모두 이승만을 지지하는 러닝메이트라고 자칭했다.
그랬지만 누구의 판단에도 이승만-이범석러닝메이트로 보였고 이들 두사람의 당선이 확실할 듯했다.
그런 상식선에 변수가 보인 것은 이대통령의 28일자 진해발언이다.

<나는 어떤 특정인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일이없다>는 이발언은 바꿔 말해 이범석은 나의 러닝메이트는 아니라는 말과 같았다.

<러닝메이트 없다>
그당시는 비밀이었지만 이대통령은 이미 별도의 포석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부통령 선거공고직후 대통령은 함심계원장을 불러 부통령에 출마하라고 했다.
함원장은 뜻밖의 제안에 질색을했다.
정치기반도 없고 이름도 알려져 있지않은 내가 부통령에 나서는 일은 당치도 않다고했다.
이대통령은 막무가내였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일단 등록을 하라는 얘기였다.
40분의 면담 끝에 함심계원잠은 출마를 약속했다.
임시관저를 나온 함원자은 함동욱비서실장을 데리고 곧장 실업인 정해영집으로갔다.
탄광업등 몇 개의 사업체를 갖고있던 정해영은 피난온 함원장을 도와주던 부산의 갑부였다.
셋이 모인자리에서 함원장은 이대통령과의 밀담을 공개했다.
뜻밖의 일이지만 내가 부통령후보 등록을 하기로 대통령과 약속을 했다는 얘기였다.
함비서실장이 난색을 표시하자 함원장은 부통령출마여부를 의논하는 것이아니라 후보등록을 하고 어떤 일들을 할것인지를 의논하는 것이라고했다.
그러자 정해영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출마하기로 했으면 하는거지요. 벽보나 만들고 선거사무소 하나 차려서 할수있는데까지 해봅시다. 선거기간이라야 불과 보름 남짓한데 큰돈들거 있겠습니까. 돈은 제가 마련해보겠읍니다.>

<정해영이 자금책>
이렇게해서 함태영은 심계원장직사표를 내고 후보등록을 했다.
재정책 정해영, 선거기획 함동욱을 진용으로한 함태영부통령후보 사무실이 개설된 것이다.
이대통령은 왜 함태영을 선택했을까.
세론은 이박사가 이범석의 야심과 족청의 세력확대를 경계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세평은 그후의 족청거세까지횰를 묶어 이박사는 족청의 성장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았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이런견해는 잘못된 추측이다.
족청은 위협이 될만한 세력을 형성한 일이 없다.
그때 이대통령의 부통령선택은 전임부통령 두사람에게서 받았던 타격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시영 부통령, 김성수부통령이 모두 정치격동의 한복판에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독단적 일처리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범석도 부봉통이 되면 이박사가 기대하는 부통령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박사와 함태영간의 인연은 독립협회사건때부터다.
조선조의 젊은 검사였던 함태영은 이때 이박사에게 호의적이었다.
정부수립후 함태영은 정치야심이 없었다.
그런그를 심계원장으로 불러낸 것이 이박사다.
이박사는 정파색이 없고 야심이 없는 노인 함태영에게는 무슨일이나 숨김이 없었다.
그런 함태영관이 부통령으로 내세운 이유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단한번도<함태영이 나의 러닝메이트다>라고 말한 일이 없다.
당사자인 함후보도 측근 두사람에게 이대통령과의 밀담은 극비로 하도록 입을 봉해버렸다.
그런데도 행정조직이 함태영의 조직이되어 대통령의 구상을 정확하게 밀어 붙였다.
바로 여기에서 이박사의 정확한 정치계산과 노련한 술수를 볼수있다.
러닝 메이트는없다는 진해발언은 이박사의 측근이던 부통령후보들을 고무했다.
특히 이갑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원내자유당합동파는 이발언을 신호로 이범석에대한 공격을 강화했다.
자유당합동파는 그들의 거점이던 여관이름을 따 세칭 삼우장파로 불렸다.
이들 삼우장파는 이범석과는 밀윌관계였다.
관내 자유당이 야파와 합동파로 갈려 경쟁하던때 족청출신의 젊은의원들은 삼우장의 세주인 이갑성·배은포·정문흠의윈을 찾아와 큰절을 하고 훈시를 듣기도했다.
그런 관계였던만큼 대통령의 뜻에 따라선 어느 한쪽이 부통령 후보를 사퇴할수도 있었다.
러닝 메이트가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이범석과 삼우장그룹의 경쟁을 인정하는 의미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이박사의 진해발언은 사실은 방황하고있는 장택상총리에게 보낸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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