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4)7기생과 「5·16」-제79화 육사졸업생들(10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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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3공화국에서 군장성출신중 야당의원을 지낸 사람은 군영의 김형일·강문봉씨와 7기의 이세규씨(56·준장·공주) 등 3명뿐이다.
강문봉장군은 63년 6대국회의에서 민정당의 전국구의원이 됐으나 한일국교정상화파동때 의원직을 버리고 나가있다가 67년 스웨덴대사로 갔다. 그후 스위스·바티칸대사를 하고 73년 9대국회에서는 유정회의원으로 있었다.
김형일장군은 중장으로 있으면서 5·16혁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가 구속됐었다. 후에 미국에 유학했다가 민정이양때 윤보선씨의 권유로 야당인 민정당에 들어가 야당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6∼9대의원을 거치면서 야당사무총장·원내총무 등을 맡기도 했다.
이세규장군은 5·16혁명에 동조하여 현역으로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맡았었다. 그가 육대교관으로 있을 때 박정희준장이 입교하여 교육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민정이양때 이씨는 군에 복귀하여 내가 합참의장을할때 비서실장으로 있었다. 68년에는 울진·삼척공비사건 때 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소탕작전을 벌였다. 그후 현역 준장으로 있으면서 69년11월 3선개헌 반대입장을 취해 예편하게 됐다.
71년에 신민당 전국구의원으로 들어갔으나 72년 10월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16개월간의 의정생활은 끝났다. 그후 두차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고 한다.
학구적이고 의욕적이었던 그는 공무원교육제도개선의 공로로 군인으로서는 유일하게 5·16민족상 교육부문 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한국역대명장』 『세계공무원교육개요』 등이 있다.
7기생으로 5·16에 참여했던 사람은 총무처장관을 지내고 현재 청소년연맹이사장인 김용휴씨(57·충남홍성·중장), 도경찰국장을 맡았던 이종학씨(57·함남단천), 최고회의 재경전문위원이던 이훈섭(58·서울), 혁명재판소재판장이던 전우영씨(64·경북예천)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5·16당시 거의 연대장급이던 7기생들은 대대장급인 8기생에 의해 거의 소외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중 이종학씨와 전우영씨는 군복을 벗고 민정에 참여하여 이씨는 치안본부차장, 전씨는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반면 7기생중에는 반혁명1호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박상훈씨(67·대령·캐나다이민)도 있다.
박씨는 5·16당시 30사단 90연대장으로 혁명군 서울지구 전투단장에 임명됐으나 이를 거절해 사단장 이상국준장, 연대장 이갑영대령 등과 함께 구속됐다. 이들은 오히려 혁명작전계획을 서울지구 방첩대장에게 제보했다고도 한다.
박씨는 후에 감형되어 풀려나와 캐나다로 이민,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인회장 등을 맡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7기생가운데 유일하게 군사령관을 지낸 이건영씨(57·강원영월)는 본래 행정장교 출신이었는데 야전으로 돌았다.
이장군은 68년 6사단장 당시 한국군 최초로 대전차장애물 방축공사를 시공, 대전차 방어시범사단으로 만든공이 있다.
이장군은 12·12사태당시 3군사령관으로 재직했었고 현재는 한국마사회회장을 맡고있다.
김영진씨(59·대령·현옥수수가공협회회장)는 육군에서 53년부터 시행한 장군 진급심사제도의 창안자다. 그는 이같은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5·16후 농림부 기획실장으로 발탁되어 농정차관보·초대산림청장 등을 지냈다.
김씨는 「자기털 뽑아 그 자리에 넣는 사람」이라고 불릴정도로 치밀하다.
또 헌병감을 지낸 김익순씨(58·소장)는 현역장군으로서 최초로 기독교의 장노 장립을 받은 사람으로 지금도 독실한 크리스천생활을 하고있고, 병참감을 지낸 이상렬씨(56·경남의령 소장)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조계종 신도회 일을 맡아보고 있다.
공군으로 갔던 윤응렬씨(56·서울·공군소장)는 국방과학연구소부소장·풍산금속부사장·코리아타코마조선대표를 맡았다가 현재는 부연산업사장으로 있다.
기마대로 평양에 입성했던 김봉건씨는 현재 개인사업을 하며 동기생회회장·평화통일정책자문위윈·고향인 초산군민회장 등을 맡으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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