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필요' 은행장들도 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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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8.31 부동산 대책 이후 시중에 떠도는 돈이 더욱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동성 흡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시중은행장들이 제안했다. 과잉 유동성을 흡수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어서 이는 사실상 콜금리 인상을 촉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금리 인상에 대한 찬반 논란도 다시 거세질 전망이다.

◆ 자금 부동화 심화 우려=황영기 우리은행장과 김종열 하나은행장 등 10개 주요 시중은행장들은 지난 16일 한국은행 초청 월례 금융협의회에서 "연 5%대의 금리로 발행되는 수천억원대의 은행 후순위 채권이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장들은 이어 "부동산으로의 자금 유입이 막힌 상황에서 자금 부동화가 더욱 심화할 수 있으므로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적절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은 경기 회복에 맞춰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한은의 입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부동산 대책에 대해 은행장들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하락이 시작되고 있고, 인기지역 아파트의 신규분양 청약경쟁률도 떨어지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부동산 가격 하락은 추석 이후 본격화하고 적어도 내년까지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장들은 그러나 은행이 빌려준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의 50%대에 머무르고 있어 가계대출이 부실화할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날 금융협의회에는 황 행장과 김 행장 이외에 웨커 외환은행장, 최동수 조흥은행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강권석 기업은행장, 정용근 농협 신용대표 이사, 장병구 수협 신용대표이사, 이윤우 산업은행 부총재, 김진호 수출입은행 전무 등이 참석했다.

◆ 양극화 심화 논란=재정경제부와 일부 민간 연구소들은 금리 인상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다.

이들은 특히 금리 인상이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이자소득을 늘리는 반면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상환 부담을 키워 경제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난해 평균 부채비율이 각각 92%와 139%여서 금리 상승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 더 부담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가계부문에서도 금리 상승에 따라 이자 소득이 늘어나게 되는 중상위층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씀씀이를 키워 소비 양극화를 부채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은은 이 같은 지적을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경제의 체질 강화가 더욱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저금리가 가계와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부작용도 있다"며 "중소기업 입장에선 대출 금리 인상보다 대출 자체를 받기 힘든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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