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출신들 소요직 독점|파격적 발탁으로 인맥기반 굳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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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밀경찰의 두목은 국가와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을 깨고 작년 11월 전KGB(비밀경찰)의 의장 「안드로포프」가 소련 공산당 제1서기에 취임한 이래 소련의 권력 중추 크렘린에 KGB 인맥이 형성돼가고 있다. 「안드로프프」 서기장은 첫 인사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KGB 의장으로 있던 「알리예프」 정치국 후보위원(59)을 정치국원으로 승격, 제1부수상으로 파격적인 발탁을 한데 이어 12월에는 자신의 후임자인 「페도르추크」 KGB의장(64)을 내상으로 기용하고 그 후임에 「체브리코프」 KGB 제l부의장(60)을 승진시켰다.
신임 내상 「폐도르추크」는 「안드로포프」가 KGB의장으로 있을 때 민족주의세력이 강한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KGB의장으로서 수완을 발휘, 「안드로포프」의 신임을 받은 인물이고 「체브리코프」 신임 KGB의장은 13년간 「안드로포프」의 부관을 지낸 사람이다.
처음 「알리예프」를 제1부수상으로 이례적인 숭진을 시켰을 때 모스크바의 관측통들은 이 인사가 「브레즈네프」 색채의 계승인사』로 해석했었다. 「알리예프」는 「브레즈네프」 전서기장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아첨을 떨었던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당 제1서기로 있었던 작년 10월 그는 공화국 수도 바루에서 열린 당 집회에 출석, 연설한 일이 있는데 「브레즈네프」 당시 서기장의 이름을 얼마나 자주 입에 올리는지 서방측 한 기자가 1백33회까지 세다가 지쳐서 그만두었다는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폐도른주크」·「체브리고프」등 그 뒤의 후속인사로 「안드로포프」 신서기장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확실히 드러나게 된 셈이다.
「안드로포프」는 이들 KGB 인맥의 기용을 통해 각료회의(정부), KGB(공안), 내무성(일반경찰) 등 권력유지에 필요한 핵심거점을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측근들에 맡김으로써 자신의 기반을 굳혔다고 할 수 있다.
「알리예프」 제1부수상이 아첨꾼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발탁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몸을 일으킨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은 이슬람교권의 후미진 지역으로 67년 그가 KGB의장으로 취임할 때만해도 『장사꾼과 뇌물이 지배하는 공화국」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곳』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부패했었다.
「알리예프」는 이 같은 부패상을 일소하기 위해 스스로 토마토 밀수 트럭운전사로 변장, 도중에 통행료를 받는 경관을 적발하고 당시의 「아훈도프」 당 제1서기의 구린 곳을 뒤져내 「브레즈네프」에게 보고, 그를 실각시키는 등 과감한 수술을 단행했다.
동시에 경제의 근대화에도 실력을 발휘, 60년대까지 최후진 지역이었던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을 70년대에는 소련평균치를 넘는 농공업 증산지역으로 올려놓아 10월혁명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수완 때문에 크렘린 내에서는 그가 곧 다음 수상이 될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알리예프」는 필요에 따라 강압수단·술수, 때로는 아첨도 불사하는 마키아벨리적 야심가이며 동시에 근대적인 정치센스와 KGB맨 다운 정보조작능력을 갖춘 인물로 수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페도르추크」 신임 내상이나 「체브리코프」 KGB의장은 베일에 가려진 KGB 출신 인물이라는 이유도 있어 그 경력이나 개성 등이 상세히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안드로포프」의 KGB두목시대에 활약하고 그의 마음에 들었다는 점만으로 보더라도 「현대적 KGB맨」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KGB에 대한 이미지는 소련 국내에서도 크게 바뀐 것은 틀림 없다. 「스탈린」 시대의 「사형집행인」이라는 포악한 인상은 많이 불식되고 있다. 하는 일은 옛날과 똑같으면서 국민들 사이에는 「깨끗한 엘리트 집단」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노력,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안드로포프」의 등장 및 KGB인맥의 형성이 가능한 것도 이런 이미지 개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안드로포프」는 「알리예프」 등 이른바 「세마리의 까마귀」 외에 KGB스태프인 「사라포프」를 외교문제 보주관(중공문제 전문가)으로 기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교문제에서의 기민한 대응, 정치국 정례회의 내용의 공개 등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없었던 「안드로프프」류의 정치스타일이 서방측의 주목을 끄는 배경에는 이들 「현대KGB맨」의 등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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