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게으른 노동자」로 골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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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안드로포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소련 경제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노동자들의 태만에 있다고 보고 금년 들어 직접 공장까지 찾아다니며 「질서와 규율」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모스크바 시내의 식당이나, 영화관, 이발소 등에선 「기이한 검문」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과 감사기관 직원들이 손님들을 일일이 붙잡고 근무기간 중 직장에서 뺑소니친 사람들을 이 잡듯이 찾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의 직장 근무태도는 공산화되기 전에도 「여유만만, 유유자적」하기로 이름 나기는 했지만 볼셰비키혁명 후에도 그런 버릇은 여전하다.
「스탈린」시대엔 태만한 노동자들을 법정으로 끌어가곤 했지만 그런 처벌이 없어진 요즘에는 출퇴근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일상화돼 있고 근무시간 중 자리를 뜨거나 술에 취해 빈둥거리고, 상점 앞에 줄을 서기 위해 외출하는가하면 아예 집에 들어앉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사람도 적잖다.
모스크바시의 감사기관인 검열위원회가 최근 밝힌 노동자들의 근태실적을 보면 2백 45개 공장에서 근무 교대시간에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노동자들은 10%도 안된다. 그런 구체적 예로서 「평화」라는 이름의 한 공장에선 상오 6시 30분의 작업교대시간은 서류상으로만 있을 뿐 실제 일이 시작되는 시간은 한 시간 늦어지고 있으며, 반대로 하오 퇴근은 55분 빠르다는 얘기였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공장에선 경축일이나 휴일 또는 봉급 다음날은 아예 술에 취해 직장에 나오지 않는 숫자가 평상시의 세배나 된다.
이같은 작업태도 때문에 82년 소련의 산업생산은 당초계획4.1%를 밀도는 2.8% 성장에 그치고 노동생산성은 이보다도 훨씬 못한 2.l% 증가에 머물렀다.
그러나「게으른」노동자들은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모두 있다. 모스크바시 검열위원회가 3만명의 시민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73%는 대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병원이나 관청 또는 상점에 볼일이 있는데, 이런 곳도 모두가 근무시간에만 일을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선 『고장난 TV를 수리해 줄 기술자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기발한 핑계를 내세운 사람도 있다.
소련당국은 해고나 감봉 등의 처벌을 하겠다고 윽박지르지만 별 효과가 없다.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노동자들이 그런 위험에 코방귀를 뀌는 이유로서 옴스크의 한 공장 기술자의 예를 들고 있다. 직장에서 늘 술에 취해 있기 때문에 해고 위협을 받은 그는『제발 좀 쫓아내 주시오. 그러면 다른 공장에서 당장 지금 월급 2백 50루블(약 30만원)보다 더 많이 주고 모셔 갈거요』라는 배짱을 퉁겼다는 얘기다.
공장책임자들 역시 노동자들의 징계를 주저한다. 자기공장에서 노동자 징계건수가 늘어나면 상급기관으로부터 자신이 무능하다는 판정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련 지도층 사이에서는 기업 책임자가 태만한 노동자들을 의무적으로 징계하도록 입법화하는 한편 노동자들이 l년에 두 번 이상 직장을 바꾸지 못하게 새로운 규정을 만들자는 의견이 있으나 오히려 긁어 부스럼격으로 생산을 더 위축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아직 확정은 못하고있다.【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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