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IBM의 두뇌 「요크타운 연구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불황을 이기는 단 하나의 처방은 기술 혁신이라는 얘기가 있다. 특히 기술집약적인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하겠다는 마음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돈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어서 기술혁신의 목소리는 크지만 그 결과는 미미한 경우가 허다하다. 철저한 자유경쟁체제와 시장원리만이 통하는 미국 사회에서는 기술개발에 한발 늦는다는 의미가 곧 기업의 몰락과도 직결된다.【요크타운=장두성 특파원】
그래서 요즘은 두뇌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경쟁은 역시 두뇌에서 판가름이 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꾸준히 두뇌에 투자해온 기업이 컴퓨터와 자동화 사무 기기 분야에서 대명사로 통하는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이다.
IBM의 81년도 매출액은 2백 91억달러 (약 21조 8천억), 미국전체 GNP의 1%를 차지하는 종업원 35만 5천명의 대기업이다. IBM이 이렇게 거대한 기업으로 자라나기까지, 또 그 거구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 것은 두뇌 집단들이 모여있는 3개의 연구소다. 그 중에서도 기초과학에서부터 미래의 선도기술까지를 연구하는 요크타운 연구소 (토머스 워트슨 연구소)가 기술개혁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기자가 요크타운 연구소 취재를 제의했을 때 홍보담당 「앤드루·러슬」씨는 『IBM은 매스컴에 연구실 내부를 개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거절하면서 자료와 설명만으로 대신할 것을 제의해 왔다.
작년여름 일본기업의 IBM컴퓨터기밀 절취미수사건 이후 그 만큼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IBM이 연구 개발에 사운을 거는 것은 연구 투자비용으로도 알 수 있다. 작년에는 매출액의 5.54%인 16억 1천 2백만달러를 연구개발비에 투입했다. 이 회사는 3개의 연구소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뉴욕시 북쪽 50km에 있는 요크타운 연구소로 IBM연구진의 총본산이다.
다른 하나는 실리콘밸리 부근 샌호제이에, 또 다른 연구소는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해 유럽의 두뇌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요크타운 연구소가 갖는 비중이나 기여도는 대단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역사는 69년 전인 19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l924년 IBM사로 개칭하기 전의 회사인 CTR회사가 출범한지 3년째 되는 19l4년 「토머스·워트슨」 1세가 연구부를 발족시켜, 요크타운 연구소가 그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 2천백명>
「워트슨」사장은 45년 정식으로 토머스워트슨연구소를 독립기구로 발족시켰다. 연구소가 설립된지 3년만에 연구진들은 신형 전자계산기 SSEC를 만들어냈다. 4년 뒤인 52년에는 50년대 컴퓨터의 대명사로 통하던 700시리즈의 첫 작품인 701을 탄생시켰다. 뒤를 이어 60년대 컴퓨터의 대표주자 7000을 발표했고, 70년대에도 360, 370의 시리즈를 내놓아 컴퓨터=IBM의 이미지를 확고히했다.
61년에는 현재의 요크타운연구소를 준공, 콜럼비아대학 구내에 있던 연구실과 시설을 옮겨왔다.
IBM산하 3개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은 모두 2천 1백명으로 이중 절반가까운 숫자가 요크타운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인원이 많다는 것에서만이 아니라 연구의 질도 요크타운랩이 앞선다. 요크타운랩은 파급효과가 큰 기초연구나 미래에서나 가능한 기술분야 연구를 맡고 있다.

<4방 10cm의 크기>
요크타운 연구소는 컴퓨터과학과에만 3백 50명이 소속돼 있고, 그밖에도 반도체과학 및 기술과, 응용과, 전산시스팀과, 수학과학과, 물리학과 등 과학 및 기술분야를 망라해 서로 유기적인 연결 아래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미국은 연구원들이 대우보다는 연구 할 수 있는 분위기와 두뇌집단의 수준을 보고 몰려들기 때문에 요크타운랩은 IBM의 다른 분야와는 달리 아주 자유스럽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자유복장으로 다닐 수 있고 출퇴근 카드를 찍지 않아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점심시간에 체스를 두거나 심지어 근무시간에 음악 감상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발상이 나올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통해 토머스 워트슨 연구소는 현대컴퓨터의 기억장치가 되는 전계효과반도체를 만들어 냈다. IBM이 개발한 최대 규모 집적회로 (VLSI)인 2백 88K비트 기억용 칩이나 일본이 자랑하는 2백 56K비트 기억용 칩이 모두 1BM이 만들어 낸 전계효과트랜지스터라는 것 한 가지만 보아도 이 연구소가 컴퓨터분야에 끼친 공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밖에도 컴퓨터 언어인 FORTRAN, APL 등이 모두 이 연구소의 작품들이다.
현재 IBM이 야심을 갖고 실용화를 서두르는 분야는 90년대 컴퓨터 시스팀의 기본 재료가 되는 조셉슨 접합 소자라고 대외담당 「반더·뮬렌」박사는 말한다. 초고성능 컴퓨터를 사방10cm 크기에 모두 집어넣어 보자는 것이 조셉슨 소자를 연구하는 목적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조셉슨 소자는 섭씨 영하 273도 근처에 이르면 물질의 전기적인 성질이 바뀌어 초전도성을 갖는다는데 착안한 미래의 반도체라는 것.
조셉슨소자는 요크타운연구소와 취리히연구소가 79년 합동 연구를 통해 이미 1만 6천 비트짜리를 만들어 실험해 본바 있다는 얘기다. 이 때 컴퓨터 내에서 회로 작동 속도는 10피코초 (1피코초는 1조분의 1초), 소비전력은 1백만분의 수밀리와트였다는 것이 「뮬렌」박사의 설명이다.

<초당 10억개 명령>
IBM은 90년대 실용화를 목표로 여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구소의 실명으로는 조셉슨 소자가 실용화되면 사방 10cm의 입방체속에 1억2천8백만 비트의 기억용량을 비롯한 논리회로까지 집어넣어 타자기만한 초고성능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컴퓨터가 명령을 수행하는 속도는 1초에 7천만개가 되리라는 것. 현재 사용 중인 IBM의 대형 컴퓨터가 4천8백만 비트의 기억용량과 1초에 3백50만개의 명령을 처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혁신적이라는게 연구소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10억 비트 이상의 기억용량과 1초에 10억개의 명령을 수행하는 컴퓨터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밖에도 73년 노벨 물리학상을 탄 「에사끼」(강기령어나)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조셉슨 소자의 대를 잇게 될 것으로 보이는 초격자반도체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와 아울러 로보트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연구가 가속되고 있다. 확실한 보장이 없더라도 20년, 30년후를 내다보고 두뇌에 투자하는 것이 미국의 기업, 특히 IBM의 경영원칙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