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차례 "나는 모신다" 79% "내 자식 때는 … " 4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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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1=주부 정경숙(58.가명.경기도 용인시 수지읍)씨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물론 1년에 여덟 차례 제사를 모신다. 남편과 사별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정씨는 제사를 고집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 모인 형제들은 남편이 숨진 지 오래된 만큼 제사 횟수를 줄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씨는 맏며느리인 자신의 몸이 성할 때까지는 계속 제사를 모시겠다고 고집했다. 정씨는 "20~30명이나 되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사는 얘기도 하고 아이들 크는 모습도 보는 즐거움이 있는데 힘들다고 이를 그만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사례2=박경환(45.가명.서울 역삼동)씨는 올 추석부터 차례를 인근 성당에서 지내기로 했다. 연로하신 아버지(86)는 지난 설날 차례 때 조상에게 이를 고하면서 울었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씨는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부부싸움을 하거나 부모.자식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보다 성당에서 조상을 추모하는 게 가족 화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가족 구조와 사회 의식은 급격하게 변했지만, 대부분 한국인은 여전히 전통적인 차례와 제사를 고수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례1과 사례2의 비율은 8대 2 정도다.

중앙일보가 전국 성인 남녀 744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차례.제사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다섯 명 중 네 명이 추석과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78%), 기일에 조상 제사를 모시고(79%)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와 제사에 대해 따로 물었으나 응답 비율은 비슷했다.

음식을 간소하게 하거나 부모 제사를 함께 모시더라도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아들 집에서 차례.제사를 모시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자녀가 자신의 제사를 모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6%에 불과했다. 차례.제사의 전통이 유지돼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2%였지만, 막상 이 같은 전통이 계속 지켜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절반 미만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차례.제사를 모시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47%는 집이나 종교기관에서 추모식을 하고 있으며, 45%는 추모식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 가족 모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 대상자의 99%가 어떤 식으로든 조상을 기리고 있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이유로는 종교 때문이라는 답변(70%)이 가장 많았고, '원래 지내지 않았다'(12%), '가족 간의 의견차이 때문(7%)' 등의 순이었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성균관 최근덕 관장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형제자매가 웃는 얼굴로 만난다면 명절 및 제사문화가 좋은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창운.문경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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