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업계 파산 도미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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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 파산 보호를 신청한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 소속 여객기들이 14일(현지시간)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공항에 줄지어 서 있다. [디트로이트 블룸버그]

항공사들이 계속되는 내우외환에 휘청거리고 있다. 고유가로 항공기 제트유 가격이 치솟고, 저가 항공사의 공세로 출혈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CNN머니는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미국의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항공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미국의 7대 항공사 중 델타.노스웨스트와 유나이티드.유에스에어웨이 등 4개사가 파산 보호 상태에 놓이게 됐다.

미국의 대형 항공사가 무더기로 파산 보호에 들어가는 것은 1991년 팬암.이스턴.브래니프항공의 파산 이후 14년 만이다.

잦은 사고로 신뢰가 떨어진 일본항공(JAL)은 회사채 등급이 정크 본드 수준으로 추락했다.

?눈덩이 손실에 경영난=미국 항공업계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323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올해에도 90억~100억 달러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델타항공은 자산 가치가 216억 달러인데 부채는 이보다 많은 283억 달러다. 델타는 최근 4년반 동안 단 한 번만 흑자를 냈다. 노스웨스트항공도 자산가치(144억 달러)보다 부채(179억 달러)가 많다.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과 콘티넨털도 경영난으로 파산 보호 신청 직전까지 간 상태다. 이 항공사들은 사측의 압력에 밀린 노조가 연금과 인력을 줄이는 데 동의해 파산을 모면했다.

?고유가에 출혈 경쟁=항공사 파산의 가장 큰 원인은 치솟는 국제유가다. 항공사들은 지난 6월 이후 20%나 급등한 제트유 가격이 파산 보호 신청에 이르게 된 주요 배경이라고 밝혔다.

미국 항공교통협회(ATA)는 지난 4년간 항공유 가격이 239% 상승했다고 밝혔다. 올해 항공업계가 부담해야 할 항공유 비용은 지난해에 비해 92억 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ATA는 예상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유가는 배럴당 60달러를 훌쩍 넘어 7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직원에 대한 연금 부담이 늘어나는 등 인건비도 경영난을 가중시켜왔다. 미국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조종사의 시간당 임금은 미국 최고다.

여기에다 사우스웨스트.제트블루.에어트랜 등 저가 항공사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업계의 출혈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저가 항공사에 맞서기 위해 대형 항공사들은 불가피하게 국내 노선의 70% 이상에서 요금을 내려 이익이 크게 줄었다.

이런 가운데 노스웨스트는 지난달 정비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등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구조조정이 살 길=뉴욕 월가에서는 대형 항공사들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마켓워치는 미국 내 적자 노선을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켓워치는 델타와 노스웨스트가 파산 보호 상태에서 15%가량 노선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파산 보호 기간에 연금을 대폭 축소해 경영이 정상화된 사례는 다른 항공사들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항공업계는 근본적인 구조조정보다는 정치권 로비에 더 열중하고 있다.

항공업계는 ATA를 통해 유류세 1년 유예를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의회가 갤런당 4.3센트인 항공기 제트유 세금을 1년 유예해 줄 경우 미국 항공업계는 6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 업계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복구와 관련해 의회가 심리 중인 재난구제법에 항공사 지원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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