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하도급이 뭐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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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주에 화물차 운전 기사들이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 공장 출입구를 화물차로 막고 시위를 하는 바람에 철강 수송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 부산 및 수도권의 화물차 운전기사들도 운송을 거부해 수출 물량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화물차 운전 기사들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크게 보면 화물 운송이 하도급과 비슷한 관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도급이 뭔지 알아 볼까요?

비슷한 업종에 있는 큰 회사가 작은 회사에 일의 일부를 위탁하거나 부품 제작 및 수리를 맡기는 것을 '하도급(下都給)'이라고 합니다. '하청(下請)'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일본식 표현이기 때문에 정부에선 하도급이란 용어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바퀴나 연료탱크.의자.엔진 부속품 등을 중소기업에 맡겨 생산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하도급입니다. 아파트도 건설회사 이름을 따 '△△아파트''○○아파트'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아파트 건설과정을 보면 해당 건설회사의 지휘 아래 몇 단계에 걸쳐 수많은 중소업체가 참여해 건설하는 것으로 많은 하도급이 이뤄집니다.

전기 공사는 A업체가, 소방 시설은 B업체가, 실내 인테리어는 C업체가 맡는 식이죠. 또 C업체는 인테리어 작업 중 도배 부문만 떼어 D업체에 넘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하도급을 받은 C업체가 D업체에 다시 하도급을 준 셈이 됩니다.

정부는 법적으로 대기업(제조업의 경우 자본금 80억원 초과)이 중소기업에 일을 맡기는 경우를 하도급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중소기업 간에도 일을 맡기는 기업(원사업자)의 연간 매출액이나 종업원 수가 일을 맡는 기업(수급 사업자)의 두배가 넘을 경우에 하도급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면 왜 기업들은 하도급을 하게 되는 걸까요. 자동차를 만들려면 엔진.바퀴.연료 탱크.의자 등 각종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제품들을 자동차 회사에서 전부 다 만들려면 제품별로 공장을 세워야 하고 수십만명의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공장을 세울 돈을 마련하기도 힘들고 직원들 관리도 어렵습니다.

이런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는 전문적으로 부품만 만드는 회사에 주문을 해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입니다. 이 때 원사업자는 하도급사업자에게 제품의 규격이나 성능 기준을 지정해 주기 때문에 자신들이 필요한 제품을 입맛에 맞게 쓸 수 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싸기 때문에 대기업이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듭니다.

또 중소기업들끼리 서로 하도급을 맡기 위해서 경쟁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좋아지지요.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하도급 거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2백80만개 사업체가 있는데 이 중 72.8%가 하도급을 받아서 운영하는 중소기업입니다.

큰 업체들은 중소기업에 일을 한번 맡겨보고 잘하면 계속 일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큰 업체에서 지속적으로 일감을 맡는 업체들을 흔히 '협력업체'라고 부릅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이런 협력업체가 5백여개가 넘습니다.

대우건설의 협력업체는 8백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큰 기업이 망하면 이런 협력업체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외환위기 때는 큰 건설업체가 부도나면서 작은 업체들이 줄도산하는 일이 벌어졌지요.

하도급은 필요하지만 이처럼 부작용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입니다. 작은 회사는 하도급 일감을 못 받으면 수입이 크게 줄기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집니다. 이 때문에 작은 회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일감을 계속 받으려고 큰 회사 눈치를 보게 됩니다.

이런 점을 악용해 일부 큰 회사들은 제품 납품 대가로 주기로 했던 돈을 안 주거나, 현금 대신 어음으로 대금을 주기도 합니다. 어음을 받으면 몇달을 기다려야 현금으로 바꿀 수 있고, 돈이 급하면 몇달치 이자를 떼고 현금으로 바꿔야 합니다.

특히 하도급 업체가 적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되면 값싼 불량 자재를 쓰게 되고, 이런 경우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엔 대기업이 중소업체의 경영에 간섭하는 일까지 생기곤 합니다.

그래서 정부에선 작은 회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85년에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또 불공정 거래를 단속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는 하도급 문제만 담당하는 국(局)이 있습니다. 공정위에서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살 때 신용카드를 쓰는 것처럼 기업용 구매카드를 쓰도록 권장하고 있고, 매년 1만~3만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불공정 거래를 적발해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도급의 보호 대상이 주로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집중돼 있어 운송업 등 서비스 용역 부분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화물 운송업자들은 현재로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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