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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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인공 조병만·강계열 부부는 98세, 89세다. 노부부의 닭살 돋는 사랑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고 코끝이 찡해진다. 시골 아버지는 올해 89세다.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29일 입대를 앞둔 손자에게 “네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춤을 췄단다”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할매요, 손자가 군대 간다고 하네”라며 마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해가 지면 밭일 나간 어머니가 왜 돌아오지 않느냐고 혼잣말을 한다.

 노부부의 사랑이 새롭고 신기하니까 20대가 ‘님아…’ 상영관으로 몰린다. 한국의 고령부부 통계는 없다. 박상철 전 서울대 교수의 『100세인 이야기(Centenarian)』에 몇몇이 등장한다. 제주에 사는 102세 할아버지와 98세 할머니가 최고령 커플이다. 2002년 조사 당시 회혼(回婚·결혼 60년)을 훨씬 지나 80년을 맞았다. 조사팀이 “영감님을 사랑하세요”라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저 영감은 늙어서 싫어”라면서도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고 한다. 강원도 횡성군의 90대 부부는 “잘 때 당연히 손잡고 자지. 얼마 전부터 서로 건들지 말고 손만 잡고 자기로 했어”라고 애정을 표현했다.

 75세 이상 후기고령자(60~74세는 전기고령자)는 전 인구의 5.2%다. 2022년이면 7.1%가 된다.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 인구의 7%를 넘은 지 22년 만에 후기고령 노인이 7%를 넘게 된다. 회혼 부부가 늘어날 것이다.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은 78.5세(여성은 85.1세),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2.2세(여자 29.6세)다. 이혼하지 않는다면 평균 45년 같이 산다.

‘님아…’의 원작인 KBS1 TV의 ‘백발의 연인’을 보면 조씨 할아버지의 애정 표현 방식은 다양하다. 수시로 “예뻐요”라고 말하고, 무시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표시를 한다. 꽃을 꺾어다 주고 피부염이 생긴 할머니 팔뚝에 “호, 호” 소리를 내면서 분다. 박 전 교수는 강원도 화천군의 노부부를 보고 “사랑은 나이와 상관 없고,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백년해로의 비결은 뭘까. 이탈리아 장수마을 사르데냐의 노부부는 가정의 평화를 들었다. 89년 해로한 영국 부부 역시 가족중심적인 생활을 꼽는다. ‘님아…’의 주인공 부부는 하대(下待)하지 않고 존칭을 쓴다. 내년은 청양의 해다. 양은 무리 지어 산다. 배려와 존중이 없으면 사랑이 뿌리내릴 수 없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