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을 우롱한 국방부의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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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9일 발효된 ‘한·미·일 3국 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공유 약정’을 놓고 ‘밀실 추진’ 논란에 휩싸였던 국방부가 체결 시점을 놓고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은 지난 26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일이 29일 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사흘 전인 23일, 일본과 한국은 각각 26일 약정서에 서명을 마친 상태였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29일 0시 약정이 공식 발효된 지 수시간이 경과한 이날 오전에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 사실을 밝히며 “송구스럽다”고 했다. 국방부가 국민과 언론에 명백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오죽하면 여당 소속 황진하 국방위원장까지 “장관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며 질타했을까.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정보는 많을수록 좋은 게 우리 처지다. 한·미·일 군사정보 교류는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제한한다는 조건 아래 국익 차원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절차다. 2012년 7월 이명박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 교류 협정을 국무회의에 기습 상정하려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반발이 일자 ‘없던 일’로 하고 덮었다. 국방부는 이 악몽이 재연될까 두려워 약정이 발효될 때까지 체결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까지 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론을 도외시한 채 몰래 체결된 약정이라면 역풍을 맞게 마련이고, 효과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올 들어 국방부가 한 거짓말은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많다. 육군 28사단 윤 일병이 선임들의 끔찍한 가혹 행위로 숨진 사실을 석 달 넘게 은폐하다 인권단체가 폭로하자 마지못해 시인한 게 엊그제다. 지금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 수준이다. 이런 군대는 아무리 최첨단 무기로 무장해도 백전백패하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상당수 외교안보 현안을 여론의 공감대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외교안보 현안은 투명한 추진이 필수적이다. 국회 사전보고를 회피하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일본과 군사정보 약정을 체결한 건 우려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