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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풍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다해진 모자위에 동전 몇닢올려놓고 바이얼린연주에 골몰하고있는 젊은 거리의 악사. 동냥강통을 앞에 놓고 아코디언을 켜는 백발의 할아버지.
마리요네트의 기막힌 연기를 연출하는 인형극사. 그리고 꽃장수들.
오다가다 만나 즉석 구성된 보컬 그룹의 기타연주와 노래. 북아프리카 흑인청년들의 드럼치는 소리.
구걸과 소매치기를 겸업하는 집시어린이들의 떼거리.
싸구려 맥주와 포두주에 대낮부터 인사불성이 돼 술병을 베개삼아 길게 누워있는 주정뱅이들.
『배가 고파요.제발 1프랑만 도와주세요』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요. 차비좀 보태주세요』 -.
땅바닥에 분필로 이런 글을 써놓고 앉아 적선을 구하는 핏기없는 젊은이들.
이런 것들이 파리의 지하절역안에서 매일 만날수있는 광경들이다.
지하철 찻간도 마찬가지다. 기타를 둘러맨 젊은이들이 갖고있는 재간으로 승객들에게 잠시「봉사」한다음 동냥주머니를 돌린다.
파리의 지하철은 새계적으로 유명하다.
1900년에 제1호선이 개통됐던 파리의 지하철은 전장이 약3백km로 뉴욕·모스크바·동경의 지하철과 함께 4대 지하철중의 하나다.
그러나 파리의 지하철이 유명한 것은 그 규모나 역사보다는 아무래도 이같은 사람사는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한 두해전까지만해도 그랬던 것같다.
한 두해전이라고 한것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말도 된다.
요즘은 동냥주머니에 웃으며 동전을 뎐져주는 시민보다 외면하는 이가 더 많다. 인정이 메말라진 것이다.
게다가 불심검문하는 정·사복 경찰관들의 번뜩이는 눈초리도 더 많아졌다.
「지하철주민」의 수도 몇년새 많이 늘어났거니와 지하철 범죄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있는 때문이다.
부랑자들의 폭행, 부녀자희롱, 소매치기와 강도, 살인까지 각종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IFRES의 최근 여론조사로는 파리시민 두사람중 한명은 지하철 공포증을 갖고있다.
지하철 범죄에서의 시민보호를 위해 안전대책의 보강이 시급하다는 여론에 따라 당국도 최근 지하철안전국(SSM)이란 기구를 신설해 지하철에서의 시민보호를 전담케했다.
4백여개의 지하철역에 2명씩의 경찰관이 고정배치되고 지하철에 여성전용칸을 따로두려는 움직임이 일고있다.
포근한 인정과 악의 없는 어릿광대들로 가득차 파리의 명물로도 꼽을만했던 지하철이 이제 살벌한 지상의 얼굴을 닮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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